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식 Sep 07. 2017

메시지의 소중함을 지탱하지 못하는 작위적인 서사와 연출

<아이 캔 스피크>가 불편한 이유





※ 영화 개봉 전, 브런치 무비 패스의 시사회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 리뷰가 아닌 비평이기 때문에 첫 줄부터 마지막 줄 까지 스포일러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영화를 관람한 이후에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아이 캔 스피크>의 심각한 문제는 주인공 나옥분(나문희)의 아픈 과거를 영화 중후반에 드러내기 위하여 그때까지 영화의 메시지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로 나열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최소 30분, 어쩌면 그 이상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20년이 넘도록 8천 건의 민원을 넣어 명진구청의 블랙리스트로 오른 도깨비 할머니가 알고 보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반전을 내세우기 위해 영화는 '재개발을 둘러싼 시장 상인들과 건설사의 대립'이라는 불필요한 서사를 작동시키고 모든 인물들은 작위적인 서사에 철저히 기능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주인공들이 영화에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보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옥분은 비가 내리는 으슥한 밤 어떤 남자가 망치로 상가 외벽을 내리치고 황산을 붓는 장면을 지켜본다. 명진구청장은 박민재(이제훈)가 이전 용천구청에서 유능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전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민재에게 구청 중요사업 중 하나인 봉원시장 재개발 건에 대해 묻는다. 민재는 도대체 언제 준비했는지 이러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재개발 중단 명령을 내려서 건설사에서 불복 소송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이용해 구청에서는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재개발 반대를 위해 힘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식 행정의 표본을 제안한다. 즉, 옥분은 재개발을 빨리 진행시키기 위해 상가를 고의로 훼손시키는 현장의 목격자로 등장하고 민재는 명진구청에 전근하자마자 재개발을 진행시킬 수 있는 핵심 아이디어 제공자로 등장한다. 영화는 마치 재개발로 인해 뭔가 큰 다툼이 벌어질 것처럼 요란스럽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봉원시장에서 재개발로 인해 강제로 가게를 철거해야 하는 인물은 유일하게 족발집 주인 혜정밖에 없으며 혜정을 위협하는 예림건설 대외지원사업부 패거리는 9급 공무원 민재의 한마디에 아무 저항 없이 굴복한다. 민재는 재개발과 관련된 소송의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강제철거를 할 수 없다고 했을 뿐이지만 옥분과 혜정 그리고 시장 사람들은 마치 재판에서 승소한 것 마냥 기뻐한다. 영화는 오프닝 쇼트부터 재개발로 인해 커다란 갈등이 벌어질 것처럼 유난을 떨다가 막상 이 서사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는데 왜냐하면 나중에 등장하게 될 위안부 청문회 서사를 진행시키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고장 난 서사를 급하게 마무리 짓는 것뿐이다. 민재는 양 팀장에게 아이디어를 얘기했을 뿐 실행하라고 하지는 않았다며 궤변을 늘어놓고 재개발 사업의 핵심 관계자인 명진구청장은 옥분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인증하는 확인서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면죄부를 얻는다. 건설사에서는 불복 소송을 통해 재개발을 진행시켰을 것이고 혜정은 족발집을 결국 철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봉원시장의 풍경은 재개발의 공포는 사라지고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하다. 영화 초반 망치와 황산으로 상가를 훼손시키는 인물로 추정되며 혜정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예림건설 패거리의 행동대장 빡빡이는 평화로운 시장 풍경 속에서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려다가 옥분에게 걸려 꽁초를 버리지 않는, 사소하지만 당연한 준법정신을 지키는 것으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다. 영화에서 위안부 청문회 서사를 진행시킨 이후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필요한 악은 위안부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로 족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인물들의 불필요한 설정은 차고 넘친다. 민재와 민재의 동생 영재는 옥분과 유사가족의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년으로 사망해야 하는 불행한 존재이며(사망 이유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동료 구청 직원들로 등장하는 양 팀장과 종현, 아영은 영화의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시종일관 실없는 농담과 행동을 일삼는 기능적인 존재들이다. 옥분의 동생 정남은 누나를 보기 싫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전화도 하지 말라며 화를 내더니 옥분이 위안부 증언을 하자 갑자기 옥분을 반갑게 대한다. 금주는 옥분의 친구 정심과 더불어 옥분이 위안부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으며 옥분이 위안부 증언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결정적인 인물이다. 정심은 치매라 제정신이 아니고 금주는 관객들에게 옥분이 위안부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갑작스러운 공정일보 기자의 난입으로 인해 돋보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내 기억이 맞다면 기자는 그 이후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한번 쓰고 버릴 인물에게 영화의 핵심 서사를 진행시킨 까닭을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영화 전개상 불필요한 서사가 되어버린 봉원시장 재개발의 서사가 희미하지만 은밀하게 '용산 참사'의 이미지를 소환한다는 것에 있다. 옥분이 위안부였던 과거를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잠시 1943년 만주로 향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과도하게 재현하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예림건설 패거리 역시 혜정에게 소리를 지르고 한번 넘어뜨리지만 때리지는 않는다. 감독은 혜정에게 더욱 가혹한 폭력을 행하는 순간, 겨우겨우 힘겹게 마무리 지은 서사가 수습 불가능 상태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더 얄밉다.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의 역사를 상기시키기 위해 또 다른 비극을 어설프게 재현하여 소비시키는 행위가 과연 옳은지 말이다.


 이렇게 실패한 서사와 연출에도 불구하고 나옥분을 연기한 나문희의 연기는 빛이 난다. 워싱턴에서 옥분이 위안부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옥분의 얼굴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미 하원의원들, 일본 의원들, 민재, 금주 등 이들의 리액션을 담아내기 바쁘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그때의 감정을 흩트려놓는데 일조한다. 정작 감동적인 장면은 옥분이 어머니의 묘에 찾아가 넋두리를 하는 장면과 봉원시장 내에서 옥분과 친하게 지내던 진주 슈퍼의 주인 진주댁이 옥분에게 섭섭하다고 한탄하는 장면이다.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빈약한 서사가 풍요롭게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였다. 더욱 좋은 환경이었다면 얼마나 더 훌륭한 연기가 탄생했을지 너무나도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문을 열어야만 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