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가 SOGA Jul 22. 2024

[집] 저 집은 꼭 사야 해!

저기에 우리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바라던 모든 조건을 갖춘 땅을 찾았어요.
하지만....

많은 집들을 보았습니다. 그중 매물은 아니었지만 제가 사는 동네 제일 안쪽 깊숙이 한눈에 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집이 하나 있었어요. 어린이 대공원을 둘러싼 담장 바로 옆 대지 30평 정도의 아주 오래된 단층 주택이었습니다. 숲이 우거진 대공원 산책로 곁이라 서울에서는 좀처럼 누리기 힘든 자연을 만끽하는 삶을 그려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집을 지어 숲 쪽으로 큰 창을 내 집안 가득 숲을 들이면 너무도 근사할 것 같았어요.


지하철 역도 도보로 멀지 않았고, 바로 앞으로 꽤 널찍한 일방통행 도로가 있어 차량 접근성도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차들이 많이 왕래하지 않는 장소라 한적하고 조용한 것도 큰 매력이었고요. 게다가 바로 옆 어린이대공원의 동물원, 산책로, 놀이동산을 마치 자기 집 마당처럼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내에서 가장 외진 곳으로 평가돼 토지의 평당 단가도 주변 시세에 비해 낮게 형성되어 있어 이보다 이상적인 조건의 집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바로 옆 어린이대공원 산책로의 가을


꼭 매입하고 싶어 소유주와 교류가 있는 부동산을 통해 매입 의사를 타진해 보았어요. 그러나 전혀 팔 의향이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습니다. 당시 집주인은 향후 옆집과 땅을 합쳐 빌라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팔지도 않는 집을 살 수는 없으니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집에 대한 미련은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을 돌려 다른 부동산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던 중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이 경매 물건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경매까지 가게 된 소유주의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저로서는 하늘이 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찾아갔던 집과 땅들 중에서도 그 집만큼 마음에 든 것은 없었으니까요.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으로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매라고?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래도 절대 포기 못 해!

'경매? 그런데 어떻게 참여하는 거지? 뭔가 굉장히 복잡할 것 같은데...'

'드라마 같은 데서 보니 조폭들도 관련돼있고 하던데 괜찮은 건가?'

'낙찰받으면 나중에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길바닥으로 막 내 쫓아내고 하는 거 아니야?'


기대감으로 인한 흥분과 더불어 부동산경매는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이니 오만가지 걱정도 함께 밀려왔습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내 욕심을 채우는 거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도 들기도 했고요. 무턱대고 도전했다 잘못돼 복잡한 이해관계에 휘말려 들어 감당 못할 고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이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테니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했지요.


경매에 무지했던 저로서는 입찰과정, 관련법률, 권리분석, 명도절차 등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더군요. 어설픈 공부로 실패할 수도 있겠다 싶어 먼저 전문 경매컨설팅 업체를 통한 참여를 고려해 보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권리분석도 대신해 주고 낙찰가 예상, 입찰 참여도 대리해 주는 등 경매 과정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해 주더라고요. 또한 낙찰 시 현재 점유자를 내보내는 명도진행도 추가 수수료를 지급하면 대신 진행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업체에 문의를 해보았어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여유롭지 않은 자본으로 내 집마련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컨설팅에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이 돈이면 나중에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까짓 거 내가 공부해서 직접 해보자.'


그렇게 직접 부동산 경매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에 전재산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작은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손해로 이어질 수 있으니 최선의 노력으로 접근해야 했습니다. 우선 서점에서 비교적 내용을 쉽게 설명한 경매 관련 책들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부분들은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보았고요. 

저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매를 독학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자금 여력이 된다면, 컨설팅 업체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스스로 경매과정을 배우고 권리분석을 했지만, 항상 제가 인지하지 못한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항상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런 우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 같네요. 경매를 공부하는 데 들이는 노력과 시간을 보다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으니, 경매에 참여를 계획하고 계시다면 본인의 상황에 맞게 진행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지금은 세세한 사항들은 기억에 없지만 경매는 시세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부동산을 획득할 수 있는 무척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경매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는 등기부등본, 감정평가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같은 다양한 자료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해당 물건의 적절한 가치를 판단하고 위험요소들을 파악해 적정 입찰가를 산출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공부는 경매를 넘어 부동산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시나브로 어렴풋했던 부동산 경매가 차츰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나름대로 분석해 보니 다행히 그 집의 권리관계는 복잡하지 않더군요. 소유자의 담보대출로 발생한 은행 근저당과 당시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의 보증금이 가장 큰 부분이었지만 다행히 저의 입찰 예상가의 범위 내에서 낙찰을 받을 수 있다면 무리 없이 해결이 될 수 있었어요. 

어느덧 경매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이제 입찰에 참여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경매 입찰일에 입찰자가 없거나 보증금 미달, 입찰서류 미비로 인해 입찰이 무효가 되는 경우를 '유찰'이라고 합니다. 유찰된 물건은 곧 다시 경매에 나오게 되는데 종전 최저 입찰금액 대비 20%(서울의 경우) 더 저렴한 금액으로 입찰을 할 수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최초매각기일에 최저입찰가가 1억 원인 물건의 경우 유찰될 경우 다음번 입찰에서는 8천만 원, 또 그 다음번은 6천4백만 원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 금액이 되는 것이죠.) 당시 저희 동네의 유사 물건들이 일반적으로 3번째에 낙찰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점을 고려해 저는 최저입찰 금액이 80%로 떨어지는 2차 매각기일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금전적 부담이 더 되더라도 부동산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죠. 과연 두 번째 입찰일까지 유찰되어 저의 차례가 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참여하지 않은 최초매각기일(첫 입찰일) 날 입찰자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혹 다른 이가 낙찰을 받는다면 그동안 이 경매를 위해 준비해 온 노력과 시간들이 모두 의미 없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더욱이 다시는 이렇게 마음에 드는 집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첫 입찰기일에는 응찰자가 없어 유찰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저에게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된 것이지요.



이전 03화 [집] 이 땅은 한 평에 얼마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