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을 빙자한 한풀이
새해가 시작되기 전, 친구와 함께 2020년의 사주를 보고 왔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직장, 연애운에 큰 비중을 두고 사주풀이를 부탁했지만
의외로 내면의 나를 돌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다. 이 때는 화가 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이 때는 어디든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은 이야기.
신선한 사주풀이 속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독립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함께한 친구도 나도 독립성이 정말 제로인 사람들로 이 나이에도 엄마에게 찡찡거리고 먹은 거 정리 안 하고 설거지도 엄마가 빨래도 엄마가 가끔 기분 좋으면 정리정돈 정도 하는 집순이로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자취생활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고, 역시나 사주풀이에서도 독립성이 전혀 없으며, 가족과의 관계가 매우 원만함이 나온 것이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일단 루나파크는 나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작가다. 종교는 바꿀 수 있어도 야구팀은 못 바꾸는 나와 같은 야구팀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두 번째는 지난가을 아스팔트 같던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준 시 강좌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가볍게 책을 들어 올리며 읽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독립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 까지 일어난다는 에피소드가 나열되는데, 독립에 대한 기쁜 마음과 함께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감도 읽을 수 있었다.
같은 야구팀을 좋아해서 그런지 책 속 특정 야구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즐거웠다. 요즘 우리집은 각자가 어떤 책을 읽든 읽고 있다, 또는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거실 서랍장 위에 책을 쌓아놓곤 하는데 거기서 이 책을 발견한 엄마도 야구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우리 집은 모두 같은 야구팀을 응원하고 있다) 야구 입덕에 대한 계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저자는 은행에 가서 이율이 높아지는 프로야구 적금을 권유받았고, 단순히 지난번에 못했으니 올해는 잘할 거라는 은행원의 한 마디에 야구팀을 정한 것이다. 그리고 돈이 탐난다면 그 팀을 해선 안된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한참 웃었다.
최근 살짝 멘탈이 흔들리는 일을 경험했을 때, 어설프게 아는 지인들은 "괜찮니?"라고 연락이 와서 나를 화나게 했고 친한 친구들은 "네가 회복하려면 얼른 야구가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1년의 반을 야구로 살며 현생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 저자는 집에서 야구를 보다가 화가 나 바깥으로 나가 술을 마셨지만 나는 야구가 화날 걸 알기에 늘 집에 술을 쌓아두고 7시부터 마신다. (6시 30분부터 7시까지는 대개 오늘은 이기지 않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에 쌓여있다) 하지만 야구는 현생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 영원히 잊게 하진 못한다. 책 속 술래 없는 술래잡기라는 말을 읽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였구나 생각할 만큼 나는 형체 없는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것저것 하고 있는 것뿐이다.
술래 없는 술래잡기를 위해 덕질을 열심히 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도 당장 위안받기 위해 뮤지컬을 예매했으니 여기서 벗어나기엔 그른 인생이다.
콘서트를 한 번 다녀올 때마다 한 분기를 산다. 나는 1분기의 행복을 다 채워왔는데 와장창 와르르 폐허가 되어버려 부랴부랴 1분기의 행복을 채우러 다니고 있다. 뮤지컬을 한 번 보면 일주일이 행복해지고 두 번 보면 더 많이 행복해지고 그러겠지. 저자에게 산란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맥주라면, 나는 무대 위 밝은 그들이 높이 나아가기 위해 또는 그 자리에 계속 있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