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외국어' 네 전공이 뭐라고? 전공 불문의 삶

이토록 맞아 맞아만 외쳤던 책이 있던가

by 언더바

<아무튼 외국어>를 읽고


취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단어 중 하나. 전공 불문

뜻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불문학을 전공한 사람들 중 저 언어유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책 속의 저자는 그래도 어느 정도 프랑스 영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나는 전공을 삼을 만큼 불어에 딱히 로망은 없었다.

미디어 또는 국문을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실제로 원서접수를 할 때는 그때 가장 낮은 경쟁률을 가진 학과에 지원했을 뿐이다.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언어학과라는 특성이 그렇듯 네이티브에 가까운 친구들과 전공 불문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듯한 친구들로 나뉘었다.

1학년 1학기 초급 프랑스어 수업에서 "왜 불어 전공을 선택했나요?" 했을 때 모두들 그럴싸한 말로 불어와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 문학에 대한 관심을 엿보였고 나도 비슷하게 말했지만 그게 개뻥이라는 건 서로서로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전혀 불어에 관심이 없었고,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난 뒤 원어민 교수님은 나를 교수실로 불러서 "노력하고 있다만, 나는 너에게 b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없어"라고 말할 정도로 노력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길래 2학년부터는 복수전공인 미디어에 더욱 매달리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 지난 지금에도 동기들끼리 만나면 "우리는 미디어 전공이지"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불어에 대한 추억을 꼽자면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와 강사를 시작하신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꼬헤엔느를 뭐라 하지? 한국년?"이라고 했던 것과 3학점 전공 선택 수업이었지만 시를 외우고, 왈츠를 추고, 샹송을 부르고, 연극까지 하며 마치 18학점처럼 우리를 굴리고 굴렸던 문화 수업 정도다. 당시의 나는 연애도 하며 바쁜 삶을 보내고 있었고, 연애와 별개로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삶을 살고 싶어 출석만 하고 서울 시내의 궁으로 달려가 그냥 멍 때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 책의 불어 파트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그러다가도 문득 어디선가 불어가 들리거나, 어딘가에 불어가 적혀 있거나 하면 어쩐지 오감이 집중된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말이 불어인 것은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순간이다'

정말이다. 여행 가서 마주친 프랑스인, 영화, 노래에서 불어가 들린다. 그러나 뜻은 모른다. 트헤나 그헝이 들리면 대충 엄청나다는 것 같고 데졸레만 들리면 사과했구먼~ 하는 단순한 리스닝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원어민에게 아베쎄데부터 배웠기 때문에 짧은 프랑스어의 발음은 다른 외국어를 발음할 때보다 더 프로페셔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심이 없지만 돈을 퍼붓고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불어와 달리 일본어는 정말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함께 내 삶에도 일본 드라마, 일본 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살던 빌라 1층에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이웃이 있었다. 그 집의 자매들은 동네 반상회에서도 자주 마주치고 우리 엄마와도 사이가 좋아 항상 이모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보다 불과 띠동갑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었다.


엄마를 따라 그 집에 갈 때마다 일본 유학시절 혼자 녹화한 테이프, 북오프에서 모아 온 듯한 중고 음반들을 하나둘씩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모닝구무스메가 나오는 홍백가합전을 보았고, 어느 날은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 앨범을 듣기도 했다. 조카뻘의 아이가 관심을 갖는 걸 알자마자 그 자매들은 나에게 일본 대중문화를 마구 영업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고쿠센', '너는 펫' 같은 드라마가 유행하며 나는 일본 문화 정보가 많은 아이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유행했던 노래는 괴물꽃이라 부르는 노래들이었는데, 스맙의 '세상에 하나뿐인 꽃', 모리야마 나오타로 '사쿠라'와 같이 열도에서 인기가 많은 노래의 가사를 다운로드하여 이웃에게 음독을 물어보며 한국어로 써서 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때 집에서 하루 종일 이 노래들만 흘러나와서 초등학생이었던 동생은 지금도 뜬금없이 입에서 이 두 노래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외웠다. 뜻도 모르고 그저 따라 부르기 위해서 일본어를 시작했고 많은 노래를 들으면서 자꾸 나오는 단어들은 이제 뜻도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았다.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필연적으로 쟈니스에 빠진 나는 흔히 말하는 돌덕질도 시작하며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일본어를 갖게 되었다.

특히 기무라 타쿠야에 빠져 그가 내한을 온다 하면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기도 하고, 그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일본어를 공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거기까지.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공부에 적응하기 위해 드라마도 음악도 잠시 접어두었다.


그리고 나이가 든 지금. 아마 중학교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일본어 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일본 불매운동을 하기 전까지 연차 없는 회사생활을 하며 1박 2일 여행을 몇 번이고 훌쩍 떠났고,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왔다 갔다 했지만 아직도 정석의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다. 그저 좋아서 야매로 배운 일본어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을 뿐이다.


책을 읽으며 정말 공감하고, 또 옛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영어는 처음부터 포기한 사람처럼 살았던 나에게 새해에는 영어 공부를 완벽하게 해서 불어나 일본어같이 어중간한 언어 실력을 갖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했다. 이제 정말 영어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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