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드라마 속 비빈과 남산의 부장들
보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던 영화지만, 이토록 빠르게 감상할지는 몰랐다.
영화의 내용은 이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정확히 또는 어렴풋이 다 아는 그 이야기다. 매년 10월 26일이 되면 여자친구의 핑거팁을 흥얼거리며 탕수육을 먹는 나는 더더욱 이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는 방식에 대해 기대를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뱉던 '장면이 예쁘네', '연기를 잘하네'와 같은 감탄은 차치하고, 보고 나와 뱉은 첫마디는 "중국 궁중암투물이네" 였다.
같이 본 친구 또한 "궁중암투물은 본 적 없지만, 너의 감상에 나도 동의해"라고 말했다. 백수가 되어 엄마 옆에서 같이 있다 보니 우리 엄마는 그 누구보다 넷플릭스를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낮에도 틈만 나면 넷플릭스의 무언가를 틀어놓고 생활하고 계셨다.
그중 엄마가 푹 빠졌던 <금수미앙>이라는 중국 드라마는 45편에 달하는 길이로 인해 사흘에 걸쳐 다 보게 되었는데, 사건을 해결해도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드라마의 개연성에 푹 빠져 손대지 않던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드라마를 시작하려는데, 내가 <금수미앙>을 봤어.
그럼 이제 난 무얼 봐야 할까?
다소 황당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의 절반이 <연희공략>을 추천했다.
언니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궁으로 들어온 주인공 영락이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다 결국 황귀비 자리까지 오른 내용.
무려 75편이라는 긴 회차에도 불구하고, 한 30편까지는 이틀 만에 뽀갰던 것 같다. 그 뒤로 조금씩 천천히 보며 그래도 2주 안에 전부 다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캐릭터가 살아있으면 극은 재미있다.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이뤘음에도 앞으로도 이렇게 회차가 많이 남았는데 뭘 말하려는 거야 라고 생각했던 초반의 나는 반성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를 맛보면 두 개를 갖고 싶어 지는 걸 잠시 망각했다.
이상하게 <남산의 부장들>을 보는 내내 연희공략이 떠올랐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좀 더 높은 곳으로 나가기 위한 비빈들의 싸움
가볍게 엿 먹이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을 이용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에 오롯이 담겨있었다.
역사서 속에서는 비장하고 굳센 이미지였지만, 영화 속에서는 조금 더 여리고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니 <연희공략> 속 영락의 마지막이 황귀비인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영락이 황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면, 드라마는 75회가 아닌 더 짧게 끝날 수 있었겠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그 씬이 도래하자 내가 앉은 관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나 또한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로 본다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어릴 적 배웠던, 그리고 커서 다시 접했던 해당 사건에 대한 이미지와 영화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남산의 부장들이 나에겐 그저 궁 속 비빈들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