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싱어즈'를 보고.
민아,
아빠는 방금 시청한 '뜨거운 싱어즈'란 프로그램의 여운이 깊어서 잠이 잘 안 오는구나. 너는 어때? 잠 잘 오는 밤이야?^^ 동생 현이와 지난 몇 주간 '싱어게인 2'를 보는 화요일이 기대되고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월요일 저녁 9시가 기다려질 것 같구나. 원로배우 김영옥, 나문희 등 15명의 배우들이 합창단을 이루는 예능프로그램 첫 방송부터 감동이네. 아빠가 꼭 JTBC 홍보국장같구나ㅋㅋ
연기파 배우들의 솔로곡들이 이어진 오늘, 모든 배우들의 노래는 자신을 표현하는 연기 같더구나. 첫 번째 순서로 노래를 부른 올해 82세인 나문희 배우의 '나의 옛날이야기'란 노래를 들으면서 마치 그녀의 지난날의 세월이 눈에 보이는 듯했고, 그녀보다 네 살 위인 김영옥 배우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란 노래는 웃고 있는 영정사진의 주인공이 조문객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는 듯했다. 아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네. 돌아가신 엄마도 생각나고 말이야.
아빠랑 비슷한 또래의 '장현성'이란 배우의 순서. '스물다섯, 스물 하나'란 곡을 부르기 전 그가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더라.
"연극만 생각하고 살았던 20대, 그 시절이 행복했고 그때를 추억하며 노래하고 싶다"
그의 말이 진심으로 들렸어. 아빠가 대학교 2학년 때 장현성 배우를 만난 적이 있거든. 당시 종로 YMCA에서 여름방학 중에 열흘 남짓 재즈댄스 특강이 있었어. 과외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등록을 했지. 수업 첫날, 수십 명의 수강생 중에 남자는 모 대학 응원단의 남학생이 서너 명, 그리고 뻘쭘하게 서 있던 아빠와 삐쩍 마른 또 다른 남학생이 있었지. 그 삐쩍 마르고 길었던 그가 바로 장현성배우였어. 아는 사람이 서로 없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밥도 같이 먹었고,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희미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건 그가 서울예대 학생으로 배우의 꿈을 꾸었다는 거야. 방학 특강이 끝나고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곧 군대를 갔고, 연락이 끊어졌지. 시간이 한참 지나 '하얀 거탑'이란 드라마에서 주요 배역으로 나온 그를 봤어. 깜짝 놀랐지. 예전의 그 얼굴 그대로였어. 다만 예전에도 그가 드라마에서처럼 명확한 발음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오늘 그의 노래에서 연극만 생각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살았던 그의 20대가 그려지는 듯했어. 가난했지만 꿈으로 가득했을 그의 20대가 멋지게 느껴지더라. 자우림의 원곡도 찾아들어보았어.
장현성배우처럼 아빠의 20대도 뜨겁게 행복하게 기억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아빠에게 20대는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지금이 아빠는 관계와 일에 대한 열정이 이전보다 커져서 더 행복한 것 같아. 아주 뜨겁지는 않지만 말이야.
아들의 뜨겁게 행복할 20대가 기대된다.
아빠는 오늘 밤 그만 뜨거워져야겠다. 글 쓰다 밤새겠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