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멀어서 힘들지는 않니?
민아, 학교가 멀어서 힘들지는 않니?
집에서 민이 대학까지 1시간 반 걸리는 통학거리가 민이에게 고생이겠다 싶더라. 그래서 어디로 이사 가면 좋을지 찾아보았어. 아빠가 10년 후에는 정년퇴직인데 그때까지는 성남에서 직장생활을 할 것 같고, 엄마 근무지는 서울이어서 양재 근처로 이사 가면 교회도 가까워지고, 민이 학교도 지금보다는 훨씬 가까워질 것 같더라. 그런데 양재역 인근의 집값이 장난이 아니네. 성남으로 이사 오기 전에 알아본 양재역 부근의 아파트를 당시에 빚을 얻어 샀으면 어땠을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 아빠는 당시에 부동산을 포함한 재정에 대해 정말 무지했거든.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이야.
2년 후에야 동생 현이가 졸업할 테니 그때까지는 성남에 사는 게 좋을 것 같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민이가 어릴 때 살았던 집들이 떠올랐어.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는구나.
엄마, 아빠가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2002년. 엄마가 근무하던 마포의 학교 근처 집은 엄마, 아빠의 예산규모로는 구할 수가 없었어.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지나면 나오는 모래내 시장. 그 근처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을 얻었어. 민이를 임신한 엄마가 배가 부른 채 그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내리는 데 미안하고 안쓰럽더라. 마침 큰 아빠 가족이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큰 아빠 집이 비게 되었지. 우리 가족은 언덕 꼭대기 집에서 큰 아빠 가족의 집인, 목동 평지에 위치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단다.
그런데 모래내 집에서도, 목동 집에서도 엄마 아빠가 거실에 걸린 디지털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11시 11분인 거야. 엄마, 아빠는 종종 이렇게 말했어.
"여보, 또 11시 11분이네"
엄마는 민이를 낳으러 원주 할머니 댁으로 갔고, 원주 기독병원에서 30여 시간의 진통 끝에 민이가 태어났지. 엄마와 민이는 할머니의 돌봄을 받았고, 한동안 아빠는 엄마와 민이를 보러 원주에서 일산까지 기차로 출퇴근을 했어. 그때 아빠는 차가 없어서 할아버지가 새벽녘에 원주 기차역까지 태워 주셨단다. 3개월 육아휴직을 마친 엄마가 복직을 하게 되면서 민이를 원주 할머니 댁에 맡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목동 집으로 왔단다.
민이를 할머니 댁에 맡기고 온 그날 밤부터 엄마가 민이 보고 싶다고 우는 거야. 아빠도 민이가 너무 보고 싶었고. 민이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기도 중에 사촌 누님에게 연락이 닿았고, 민이를 봐줄 수 있다고 하셔서 누님이 사시는 은평구에 집을 구하기로 했어. 누님 댁 인근의 부동산에서 엄마, 아빠의 예산을 듣고는 작고 허름한 집을 보여주셨어.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다른 집은 없나요?" 부동산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가 한동 짜리 아파트를 발견했지.
전세금을 못 받고 나올뻔한 모래내 집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부동산 사장님께 물었지. "사장님, 여기는 매매 가격이 얼마예요?" 18평 아파트가 당시에 9천만원이었어. 해가 지고 어두워진 밤, 사장님을 따라 들어간 아파트. 처음 간 곳인데 낯설지 않고 따뜻한 느낌이었어. 집을 보여준 사장님은 먼저 가고, 엄마와 아파트를 나와 걷다가 잠깐 멈췄지. "여보, 몇 호였지? " 몇 호인지 확인하지 않고 둘러본 집이어서 엄마, 아빠 둘 다 기억을 못했지. 엄마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어. 11층이었던 건 기억했거든, 아까 방문했던 그 집이 바로 여긴데... 앗, 그런데 깜짝 놀라고 말았어. 바로.... 문 앞에 푯말이 붙어 있었어.
1111
11층 11호였던 거야. 깜짝 놀랐지. 곧 융자를 받아 우리 가족이 1111호, 첫 집을 샀단다. 그 집에서 동생, 현이도 태어났어. 엄마, 아빠에게는 1111의 응답이었단다. 순적한 곳으로 이사가 있도록 기도하자. 예비해두신 두 번째 1111호를 만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