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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아들이.

'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를 읽고

by gentle rain

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염려하시고, 건강하길 기도한다고 문자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 자가격리도 끝나고 다 나았는데도 전화로 안부를 물으신 아버지. 95세에도 정정하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과 제 일상을 조금 긴 글로 전하고 싶어요.

언제부터인지 제가 아빠 대신 아버지라고 했죠? 성인이 되고 나선지, 장가를 가고 나선지, 애아빠가 되고 나선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삼형제 중 막내로 일찍 어머니를 여읜 저를 안쓰러워하셨던 아버지가 그리운 밤입니다.


아버지,

제가 벌써 쉰네 살이네요. 참 빠르죠? 아버지는 그 나이면 젊은 거라고 하실 거죠?^^.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점점 젊음에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져요.

아버지, 아버지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더 많이 기도하셨던 걸 기억해요. 아버지 인생에 고난이 많으셨잖아요.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신 아버지. 아버지가 참 많이 사랑하셨던 어머니가 삼형제를 두고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많이 힘드셨죠?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셨을 것 같아요. 목사님의 소개로 지금의 새어머니를 만나서 쉰이 넘어 신학대학원에 가시고 교회를 개척하신 아버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교회를 건축하면서 만난 재정적인 어려움들은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저는 최근에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주기 위해 대출을 진행하고 있어요. 매매, 전세, 월세 다 내놓았지만 집이 나가지 않아 날이 갈수록 불안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한 것들을 찾아보았어요. 감사한 것들을 찾다 보니 찾아지고 불안이 작아지더라고요.

"저희가 살고 있는 전셋집에서 후년 초까지 살 수 있어서 감사. 대출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 때에 줄 수 있음에 감사."


요즘 제가 '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란 책을 읽었어요.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살게 마련이다'란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아요. 책에서 말하듯 아버지도 삶이 어려워질 때 더 소중한 것을 보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매일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셨을 아버지. 저도 아버지를 따라서 그렇게 기도하고 싶은데요. 잘 안되네요. 더 소중한 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데요.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하게 하라'는 성경구절처럼 모든 근심과 걱정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아버지처럼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싶어요. 50 이후는 정말 태도의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콧은 '애매함을 견뎌내는 능력을 성숙의 요소'로 보았다고 해요. 알 수 없는 앞날의 애매함을 견뎌내는 성숙한 50+가 되고 싶어요. 마치 오늘 하루가 제 인생의 전부처럼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싶어요.


아버지!

인간(human)과 겸손(humility)은 라틴어 흙(humus)에 어원을 두고 있대요. 인간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에 겸손하라고 하는 것 같아요. 겸손히 지금을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여기에서 살아가고 싶어요.

아버지, 첫째가 대학생이 되니 얼굴 보기가 힘드네요. 공허함이 슬쩍 마음 한편에 자리 잡으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요즘엔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래려고 해요. 그런데 글을 잘 쓰려니 어렵네요. 그냥 글을 사랑하는 것이 제게 필요한 것 같아요.


아버지,

건강하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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