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크리스천에게 자유란 뭐예요?" 다락방을 마치고 가방을 어깨에 건 순간, 후배가 내게 물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다락방은 구역예배처럼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삶을 나누며 예배하는 모임이다. 오늘 다락방은 단골 미장원에서 모였다. 미장원 원장과는 어느 순간부터 형, 동생으로 지내오고 있다. 그를 안 지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그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앙을 갖기를 권면했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다.
그의 질문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세상의 성공 기준에서 자유함을 잠시 나누고 헤어졌다. 내게 있어 자유란 무엇일까?
뜨거웠던 20대에 하덕규의 '자유'란 노래에 꽂혔다. "껍질 속에서 살고 있었네, 내 슬픈 영혼. 껍질이 난지 내가 껍질 인지도 모르고" 가사로 시작되어 '자유'란 단어가 반복된다.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그토록 찾았던 자유~" 노래 말미의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란 것을 노래를 부른 작사가의 히스토리를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노래를 들을 때는 '자유'가 내 것 같았다. 그러나 '자유'는 지속적인 영적 전투의 승리가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무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여전히 자유롭고 싶다. 내일 출근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고, 노랗게 염색을 할 자유도 있고, 밤을 새워 책을 읽을 자유도 있다. 그러나 피곤함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잠을 자야 한다. 단잠을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예약을 건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란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왔다. 출판사 이름이 '달콤북스'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책 표지에 쓰여있다. 오늘 밤 이 책이 내게 달콤한 위로가 될 것 같다. 조금만 읽다가 자야겠다. 살짝 피곤해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요. 내 인생의 무대에 잠시 조명만 켜둔채 비워두려구요
오늘 밤엔 살짝 피곤할 자유를 즐겨볼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