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얘기할까? 얼굴을 보고 얘기할까? 말하지 말까? 여러 갈래의 생각이 들기도 전에 불안이 올라왔다.
담임을 맡고 있는 그는 학급의 몇 명의 남자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내게 진심으로 아이들을 상담해달라고 했다. 알토톤이었지만 앙칼진 목소리의 그는 남자아이들에 대해 불만을, 아니 비난을 되풀이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변해야 할 사람은 학급의 남학생들이 아니라 바로 그였다. 조금이나마 그의 반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여기저기 문의하고, 예산을 짜고, 관리자에게 구두로 허락을 받아 그의 반 학생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이제 그를 만나 프로그램 내용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정해야 했다. 그러나 만나고 싶지 않았다. 상대를 꾸짖는 듯한 말투, 마음과 다른 상투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호흡을 깊이 세 번 연이어했다. 짧은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일정을 잡았다. 그의 말에 공감되지 않음에도 웃음으로 때론 맞장구로 불편함을 숨겼다.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왜 나는 불쾌한 긴장감을 느꼈을까? 아... 그에게서 새엄마가 내뱉었던 수많은 비난과 불평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참,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그녀라고 하기가 망설여졌다. 그에게도 그럴만한 사연이 있으리라. 그에게 미해결 과제가 남아서일까? 미해결 과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와는 일정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받아들인다. 우격다짐으로 거리를 좁힐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안다.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오늘 자기 전에 그가 평강 하길, 그의 학급이 평화롭길 기원하고 싶다. 이제 그로 인한 내 불안은 강물처럼 떠내려간다. 변기의 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가듯이...
안녕! 널 보낸다. 감정의 찌꺼기들아. 잘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