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실기시험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현아,
다리 아픈 건 괜찮아?
윗몸일으키기. 10m 왕복 달리기, 제자리 멀리 뛰기. 이 세 가지 종목을 치른 후 여기저기 아팠을 것 같은데. 운동을 안 하다가 긴장한 상태에서 몸을 쓰니 더 그랬을 거 같아. 그래도 한 번 경험 삼아 치른 실기시험이 올해 진짜로 보는 대입에 도움이 될 거야.
윗몸일으키기를 2분에 140개 해야 만점이라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유튜브를 보니까 만점 받는 수험생들이 있긴 하더라. 참, 그런데 다행이다. 윗몸일으키기 대신 메디신 볼 던지기로 종목이 바뀐다니. 본격적으로 체육실기 학원도 다녀야 할 텐데 언제가 좋을까? 다리가 아파서 일단 좀 쉬어야겠다. 다음 주 3박 4일 제주도 가족여행 다녀온 후에 실기학원 가보자. 형아 친구가 아르바이트한다는 학원부터 먼저 가보는 것도 좋겠다.
아들이 작년에 체육 관련학과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었잖아? 아빠는 그 길이 어려워 보였어. 그리고 엄마 아빠 모두 경험해보지 않은 길이라 잘 알지 못했고 말이야. '교대를 가서 체육을 전공하면 좋겠다', '대학 입학 후 다양한 체육 동아리 활동을 하면 어떨까?'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구나. 미안해.
아빠는 현이의 적성에 맞으면서도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빠의 욕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구나. 아빠가 아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걸. 그저 아빠의 역할은 아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실기시험을 보는 아이들이 수면 바지를 입고 왔다고? 유튜브에서 보긴 했지만 재미를 위한 설정인 줄 알았는데. 수면바지를 입고 있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바로 벗었다고? 안에는 반바지를 입고?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배구화를 신고 있었고, 안경을 쓴 수험생은 거의 없었다고? 다음에 실기시험 볼 때는 복장도 잘 갖춰야겠구나. 윗몸일으키기는 50번을 해서 기준인 60번에 이르지 못해 탈락이라고 했지? 그래도 멀리 뛰기는 4등급이라고? 잘했어. 우리에겐 기회가 또 있잖아. 그때까지 신나게 연습하면 되지 뭐.
아들, 혹 마음이 바뀌어 다른 진로를 가겠다고 해도 아빠는 아들의 선택을 응원할게. 고등학교 때 자신이 정말 원하는 진로를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 잘 모르겠을 때는 일단 부딪혀 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
아들이 특별한 학교를 다니기에 검정고시를 보고, 남들보다 1년 먼저 수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해. 현이의 같은 학교 친구 중에는 한예종에 합격한 친구도 있잖아. 조금 일찍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준비해 왔기에 가능했겠지만 그 친구에게 가장 좋은 길이기에 그렇게 인도하셨을 거야. 여하튼 정말 잘 되었지.
이제 우리가 준비하면 되지. 아니지. 이미 준비하고 있는 아들, 지난 수요일 실기시험 본 후 어제, 오늘 집에서 밥만 먹고 바로 독서실에 가는구나.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거야.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
이따가 보자.
사랑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