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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숨바꼭질을 멈추기

꼭꼭 숨어라. 너의 감정 보일라?

by gentle rain

학교로 공문이 왔다. 군 경력과 학력 일자가 중복되는데 각각 인정된 교사의 호봉을 정정하니 해당자는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고 생각했는데 1월에 군대를 갔으니 1월, 2월 두 달이 군 경력과 학력이 중복된다는 거였다. 호봉은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교감선생님이 책정했다. 그런데 교육부에 민원이 제기되어 방학 중 군대를 간 교사는 해당 월령만큼 호봉을 삭감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군 경력과 학력이 중복되어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선생님들도 있었고, 여러 교사노조에서 교육부의 지침이 불합리하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 전 2~3일 동안 불쾌감을 숨기고 일상을 살았다. 망설임 끝에 졸업한 지 사반세기가 넘은 대학교 성적증명서와 병력 증명서를 출력하고, 군 경력과 학력이 중복된 52일간의 기간을 적어서 교감선생님에게 제출했다. '호봉을 삭감하려면 해봐라. 내가 꼭 삭감된 금액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리라' 마음을 먹으니 불쾌감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불쾌감이 술래를 하다가 쾌감이 '땡'하고 술래에 연결된 고리를 끊은 것 같았다.


퇴근 후, 모의고사를 마친 아들이 모처럼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내가 아들이 영어 1등급을 받았다고 했다.

"아빠가 수학, 3+3=6과 같은 수식계산에서 실수가 없기를 기도했어"

아들에게 말하니, "아빠, 이번 모고에서 수학에서 수식계산은 실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과탐에서 실수를 했네" 답했다.

아내가 "당신, 수학 시간에만 기도했나 보다. 과탐 시간에도 했어야지" 말했다. 과탐에서 실수가 있었단다. 아들은 지난 7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아들이 예상했던 대로 낮은 성적이었다. 염려의 감정이 술래가 되었고 나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 그리고 괜찮은 척 아들에게 말했다. "모고 전날 들은 노래가 시험 중에 계속 생각났다고 했잖아. 다음에는 모고 보기 전에 노래 듣는 걸 자제하면 되겠다"

아내가 저녁으로 기름떡볶이와 홍합탕을 요리했다.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다. 맛있는 음식에 염려의 감정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잠시 후, 아들이 독서실에 곧 갈 것처럼 말했지만, 가지 않았다. 인터넷 강의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실시간 특별강의를 무료로 듣게 되었는데 시간이 애매하고, 다시 옷을 입고 독서실에 가기가 귀찮았나 보다.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들에게 조금씩 화가 났다. 화를 숨기려 애쓰며, "아빠, 산책 갔다 올게. 독서실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네가 좋을 대로 해" 말하고 산책을 나갔다. 아들이 나의 눈빛과 말투에서 나의 화를 눈치챘을 것 같았다.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올 건데, 뭐 먹을래?" 산책을 다녀와 아들에게 물었다.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아들의 감정을 풀어주고 싶었다. 아들도 감정의 숨바꼭질을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 꼭꼭 숨겨도 난 다 느껴져요. 내가 아직 모자란가요?"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호봉이 삭감될 서류제출로 인해 불쾌했던 감정은 숨어 다녔지만, 결국에는 술래에게 잡혀 그 정체를 드러냈다. 고 3 아들의 성적이 더 향상되었으면 하는 나의 욕심은 아들과 나 모두에게 감정의 숨바꼭질을 하게 했다. 피곤했다. 게임을 끝내려 한다.


이제는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

권위에 대한 순종,

가정의 화목,

아들을 믿어주기,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예수님의 사랑 전하기.

나 자신에 대한 부가가치 높이기,

일상에 감탄하기,

예술을 즐기기,

유연한 사고...


집중하려 하니 신난다. 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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