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글을 쓴다.
강원국 작가의 책,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지난주에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밑줄을 치지 못했고, 책의 내용도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매일 글쓰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며 어제부터 실천하고 있다. 다짐, 실천, 실패, 재다짐, 실천, 실패가 이어졌다. 그래도 또 다짐한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내게 글을 계속 써보라고 하셨다. 당시 선생님은 독후감 과제를 내주셨다. 선생님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적과 흙',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좁은 문'... 등 내 독후감 공책에 빨간색 볼펜으로 소감의 글을 매번 남기셨다. 선생님과 독후감 공책에 글을 주고받으면서 내 별명은 어느새 문학소년이 되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큰 형이 사다 놓은 삼중당 문고판 책들이 가득한 방은 내게 보물창고였다. 도스트 에프스키, 톨스토이, 모파상, 앙드레 지드...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해 여름, 선생님은 여학생 한 명과 함께 나를 인근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교실에 추천해 주셨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준 것을 끝으로 글쓰기를 멈추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어린 두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들이 좋아했던 동화책의 주인공, '상철이'를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한 상철이 동생, 하철이와 함께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두세 번 상철이와 하철이 형제의 지하철 모험담을 즉흥으로 이야기해주었는데 재밌어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쓰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아도취...^^ 지금도 내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면 고등학생 두 아들은 동화책 쓰는 거냐고 묻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아내에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그때는 아내의 말에 속상해했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도통 보지 못한 아내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다 페이스북에 특수학교에서 담임을 했던 학생과의 이야기를 조금씩 올렸다. 그 글들을 모아 사회복지재단에서 주관한 글쓰기 공모전에 제출해서 입상을 했고 상금도 받았다. 이후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간간이 글을 올렸지만 반응이 미비했다. 이후 어렵사리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어 글을 발행할 기회를 얻었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면 내 삶에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글쓰기가 습관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책 출간의 꿈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6.25 때 군대에서 통역을 하셨던 아버지는 미국 유학의 꿈을 환갑이 지나 이루셨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고 하신 아버지. 나는 다시 꿈꾼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을 쓰는 꿈. 그 단 한 사람이 바로 내가 될지라도 나는 꿈꾼다. 매일 글쓰기를 통해 어제보다 단 1mm라도 성장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