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선택이다.
2020년 12월 31일, 고등학교 후배로부터 카톡이 왔다.
"지수형 어떻게 지내세요?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언제 시간 되시면 통화해요"
후배의 글에서 절박함이 전해졌다.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배의 중 2 아들은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전화기로 들려오는 후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후배와 나는 고등학교 중창단에서 선후배로 만났다. 대학교 때는 자주 어울려 다녔고, 한동안 같은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가끔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4~5년 전, 두 자녀를 남기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나의 후배이면서 후배의 친구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다. 이후 이전보다 자주 소식을 주고받고 지냈다. 내가 50세가 되어 상담교사가 된 것처럼 후배는 비슷한 나이에 물리치료사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2021년 1월 1일, 후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마음이 어때?
하나님께서 평안 주시길 기도한다.
우리 3주간 매일 감사일기 나누는 건 어때?
21일이 습관을 만드는 기간이라 하더라고.
아들에 대한 감사도 좋고, 일상에 대한 감사도 좋고"
후배는 다음 날부터 내 감사 톡에 답글의 감사 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21일을 넘어 매일 감사 톡을 주고받고 있다. 후배의 첫 번쩨 감사 톡은 '1. 일용할 양식 주셔서 감사'로 시작한다. 후배의 감사 톡을 읽으며 나도 오늘의 양식에 감사하게 된다. 후배의 아들은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언제 땅에 발을 내딛고 단단하게 설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그때가 오리라고 믿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뻬앗아 갈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라고 했다. 사춘기 자녀를 둔 아빠들은 여러모로 힘들다. 부모님은 점점 아프시고, 아내는 갱년기를 맞이하고, 회사생활은 불안하다. 게다가 자녀들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감사를 선택할 수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율학습을 마친 큰 아들을 태운 차 안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러나 최근 모의고사 성적이 아들과 나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나는 감사를 선택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아들이 차에 타기 전, 오늘의 큐티 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그 내용을 아들과 나누었다. 나눌 내용이 없을 때에는 차에 함께 탄 아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후 차 안의 공기는 놀라울 만큼 부드러워졌다. 피곤할텐데 아들이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을 삼일째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작심삼일을 넘길 것 같다. 내일은 친목회장으로서 장례식장에 간다. 코로나로 장례식장에서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육개장을 먹지는 못하겠지만,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헤르만 헤세는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재능이다"라고 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재능이라고 한 것이다. 재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길러지기도 한다. 이 재능은 감사할 때 그 능력이 발휘된다. 나는 매일 감사를 선택할 거다. 때론 감사를 선택할 잠깐의 시간도 없을테지만, 한 바가지 눈물 후에는 곧 감사를 선택할 거다.
사춘기 자녀를 둔 아빠들이여! 함께 감사를 선택해요. 우리 함께 감사일기 쓰는 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