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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29. 2021

사람들이 꽃을 선물하는 이유는

사랑스러운 런더너들 4



런던을 떠나는 .


오늘  10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드디어, 아르헨티나로 간다.
 

그토록 소원이었던 곳으로 오늘 밤 떠나는데,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그 튤립 때문이었다.      



  튤립은 3일째 생생하게 피어 있었다. 줄기를  비닐에 담긴 조금의 수분만으로도 기특하게 탐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여행 내내 함께 하고 싶지만, 꽃은 국제선 비행기에 들고   없게 되어 있다. 침대에 그냥 올려두고 갈까? 우리가 떠나고 하우스키퍼가 발견하곤, 뜻밖에 기뻐하지 않을까. 어쩌면 하우스키퍼에겐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속도 모르고 여전히 노오랗게 생생한 튤립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릴까? 너저분한 쓰레기들 틈에 들어가기에는 가여웠다. 고작 튤립  송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튤립도 쓰레기통에서 죽기 위해 피어난 건 아닐 텐데. 지난 며칠 동안 런던을 함께 다니며 우리에게 뜻밖의 좋은 순간들을 선물해 준 튤립이었는데.

 


이 튤립의 마지막의 순간이 쓰레기통인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걸 어떡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음만 끙끙댔다. 이를 보던 해맑이 일단 공항까지 들고 가보자고 했다. 딱히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은 채,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프론트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이 조용하고 따뜻하게 웃으며 물었다.      


  "여행은 어땠니?"


  "어우, 완벽했어요. 일정이 짧아서 아쉬워요..."     


  "언젠가 또 런던에 오길 바랄게요. 다 됐네요."      



  따뜻한 미소로 말하는 그녀.

  늘상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얼굴에 띈 미소 때문인지 왠지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다.      



  "Thank you. Goodbye."   


  "Goodbye!"

     


  오늘 처음 본 여행객에게, 어쩌면 평생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이토록 따뜻한 배웅이라니. 어쩌면 그녀는 호텔직원이 아니라 매일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직업일지도 모른다. 매일, 수십 명의 사람들이 떠날 테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다음을, 또 안녕을 따뜻하게 배웅해주는 것에 인이 박혀 사무적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따뜻했던 그녀의 미소가 자꾸만 떠올라 발걸음이 망설여졌다. 나도 무언가 따뜻한 마음을 건네고 싶었다. 늘상 그렇듯 또 누군가가 떠났다고 생각한 그녀의 순간에. 매일 따뜻한 배웅을 해 주는 그녀의 오늘에.      

그 순간,      


  "오빠 잠깐만!"


  호텔 계단을 내려가다, 오빠에게 캐리어 손잡이를 건네고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호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나라는 걸 발견하고 그녀의 눈빛에 물음표가 떴다. 찰나의 순간에 어떠한 말을 건네야 하나, 여러 말들이 스쳤다. 그리고 나온 말은,     



  "This is for you. It’s my present."
 

  노란 튤립다발을 건넸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지구만큼 커지며, 그녀의 온 얼굴에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Thank you! Thank you so much!"


  기쁘게, 한아름에, 튤립보다 더 예쁜 웃음으로, 토끼 같은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사람들이 왜 꽃을 선물하는지. 얼굴에 활짝 피어나는 이 미소 때문이 아닐까.



내게 노란 튤립은 그녀의 미소로 남았다.
이것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안녕을 말하고, 우리는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특별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어 준 튤립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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