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공포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로 갈 때 꼭 조심해야 할 것들

by 쏭작가

"준비됐어?"

"어."

"지금부턴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알았지?"

"어."

"간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공항 게이트를 나선다. 머릿속엔 조심해야 할 이유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설렘도 집어삼키는 공포감에 캐리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우리는 환상과 공포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막 발을 디뎠다.






"거기 가면 핸드폰은 절대로 꺼내놓고 있으면 안 돼."


"좋은 카메라 갖고 다니면 눈앞에서 바로 가져갈 거야. 그럼 절대로 쫓아가지 마."


"돈은 속옷 안에 조금씩 넣어 다니고, 조그마한 지갑에 돈을 조금 넣어서 따로 주머니에 가지고 다녀. 혹시나 강도를 만나면 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을 줘."


"여긴 진짜 눈 뜨고 코 베인다니까!"


우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간다고 했을 때, 먼저 이곳에 다녀온 친구들은 하나같이 조심하라고 했다. 조심, 또 조심. 치안이 불안하고, 경찰한테 도움을 청하면 경찰도 돈을 달라고 하거나 한 패인 곳이라고. 아이폰은 무조건 잃어버린다고 생각해야 하고, DSLR 카메라 같은 건 들고 다닐 생각도 말고, 강도가 돈을 달라고 하면 그냥 다 주라고. 그래야 목숨이 위험하지 않다고.


몇 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 친구 B는, 지하철에 탔다가 목걸이를 뜯긴 사건, 귀여운 꼬맹이가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자기 가방을 털려고 지퍼를 여는 걸 옆에 있는 친구가 소리쳐서 알게 된 사건과 디카를 도둑맞은 사건을 말해주며 이렇게 덧붙였다. ‘액세서리 같은 건 절대로 하고 나가지 말고, 혹시나 강도를 만나면 그가 달라는 건 그냥 다 줘’라고.


또 이곳에 다녀온 적이 있는 해맑의 지인은, 멀쩡히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지나가던 사람이 뺏어 들었다고 했다. 돌려달라고 했더니 냅다 도망치는 남자. 그 남자를 쫓아서 골목을 정신없이 뛰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단다. 물론 같이 있던 친구와도 헤어지고, 그렇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길에서 핸드폰도 없이 헤매다 다행히 숙소에 도착했단다. 후일에 이 사건을 들은 현지 사람들이,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잘못 쫓아갔다가 골목에서 패거리를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고, 핸드폰 찾으러 갔다가 죽었을 뻔했다고, 다시는 쫓아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잠깐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태연하게 걸어가더란다. 그 사람을 불러 세워서, ‘그 핸드폰 제 껀데요?’라고 했더니 ‘아... 이제 제 거예요!’ 하고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고 했다. 무서워서 싸우지도 못하고 그렇게 핸드폰을 털렸다고.

도대체 아르헨티나는 어떤 곳인 걸까. 무법천지에 마피아 조직들이 은밀하게 판을 치고, 시비가 붙으면 너도 나도 품속에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 드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선 억측이 낳는 억측이 난무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해맑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가자고 한 곳이었고, 정신 완정 무장을 요하는 곳인 데다가, 심지어 이건 신혼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맑은 이렇게 위험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다(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여행이라곤 일본만 가 본 해맑이 갑자기 난이도 최상급 남미 여행을 좋아할 수 있을까, 신혼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되면 어떡하나, 큰일을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되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후기가 필요하겠다 싶어 남미 여행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대로, 9 de Julio



카페엔 사람들이 소매치기를 당한 후기들이 많았는데, 가장 많이 당한 것이 바로 ‘오물 테러’였다. 사람이 많은 광장이나 길거리에서 주로 당한다. 정신이 팔린 사이, 갑자기 어디에선가 새똥처럼 흰 오물이 몸이나 가방에 튀는데, 냄새가 지독히도 심하다. 오물을 맞으면 순간 당황하게 되는데 이때 누군가 다가와 괜찮냐며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그렇게 옷과 가방을 닦아주다가 지갑을 털어간다. 혹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들고 도망간다. 그러니 오물 테러를 당하더라도 절대로 당황하지 말고, 누군가 도와준다고 해도 다가오지 말게 하고, 절대 가방을 몸에서 떼지 말고,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개인택시는 타지 말고 회사택시만 탈 것. 개인택시는 미터기를 잘 켜주지 않고 사기도 많고 무엇보다 치안이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RADIO TAXI라고 적힌 것이 회사택시인데, 이 택시는 미터기 요금으로 계산을 한다고 했다.


까만색 차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회사택시인 RADIO TAXI.
RADIO TAXI 안에는 드라이버 라이선스가 프린트되어 뒷좌석에 붙어 있다. 요즘은 웬만하면 거의 다 RADIO TAXI라고 한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구덩이처럼 조심해야 할 것은 계속 나왔다. 무조건 조심해야 할 것들을 되뇌고 또 되뇌다 보니, 어느새 신혼여행 2주 전. 회사에서 같이 회의하던 개그맨 Y오빠가 아르헨티나에 동창이 있다며 오랜만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 오랜만이다. 같이 일하는 작가 동생이 2주 뒤에 신혼여행으로 아르헨티나를 간다네. 생각나서 연락해봤어.]


그날 밤이 지나서 온 답장은 이러했다.


아르헨티나를 신혼여행으로? 벌써 티켓 끊었대? 티켓 안 끊었으면 오지 말라고 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황이 별로 안 좋아. 매일 거리에서 시위하는데 분위기가 험악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몸만 떠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해맑과 밤에는 절대 돌아다니지 않기로 약속하고 짐을 쌌다. 떠나기 며칠 전, Y오빠는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친구가 도와줄 거라고. 말만으로도 일말의 안도감이 생겼다. 그래, 아주 최악의 상황이라도 연락할 누군가는 있다.






공항 택시 카운터에서 택시를 예약하고, 택시 탑승장으로 간다. 누군가 티켓을 건네받고 택시를 안내해준다. 한 번 더 예약한 요금이 맞는지 확인하고 짐을 싣는다. 택시는 공항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차창 밖 커다란 전광판엔 삼성 광고가 한 번, LG 광고가 한 번, 반복해 스친다. 익숙한 텍스트, 익숙한 풍경. 지구 반대편이라는 생경함을 느낄 틈도 없이 시선을 덮친다. 여전히 늦추지 못한 긴장감 탓인지 이마저도 반갑다.

택시는 공항 요금소에서 멈춰 선다. 기사와 직원이 뭐라 뭐라 얘기하더니, 요금을 지불한 기사가 손가락 끝을 모두 오므린 채로 창밖으로 흔든다. 해맑과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한번 긴장한다. 대체 저게 무슨 뜻이지? 지금 무슨 대화가 오간 거지? 바가 올라가고 택시는 도로로 들어선다. 우리는 동공이 커진 채로 달린다. 구글맵을 켜 둔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서. 택시는 한적한 도로 위를 경쾌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택시 안에서 본 오벨리스크.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메인 도로인 9 de Juilo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택시 안에서 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첫인상은 여느 도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