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조금은 괜찮을지도 몰라

부에노스 아이레스 뒷골목에서 길을 잃다 1

by 쏭작가



한 골목 끝에 다다르자 택시기사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우리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묻는 눈치인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찌할 바를 모르기는 택시기사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구글 맵 위에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파란 동그라미가 목적지에 아직 못 미쳤다. 여기서 더 가야된다고 영어로 말하는데, 택시기사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눈치다. 답답하기는 서로 마찬가지. 갑자기 이러니 무섭기도 했다. 그 때, 택시기사가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엔, 골목을 가로막은 펜스가 놓여 있다. 사거리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호텔은 저 사거리 너머에 있었다. 골목을 둘러보니 무섭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마음 놓고 활보할 수 있는 거린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택시기사가 계속해서 말들을 쏟아냈다. 돌아가더라도 호텔 앞까지 가는 게 안전하겠다 싶어, 손짓으로 돌아가달라고 거의 애원하듯이 반복했다. 기사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기사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더니, 이내 차를 돌렸다. 오, 내 말 뜻이 통한 걸까?!


갑자기 골목 옆의 공터로 차를 몬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이게 아닌데...! 기사는 공터에 차를 세우더니, 답답한 듯이 말을 쏟아냈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니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떠났고, 우리는 공터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뒷골목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복판. 스페인어를 모르는 우리는 길을 물을 수도 없다. 운이 좋아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겠다 싶었는데, 그보다 더 먼저 사람들이 무서웠다. 소매치기는 아닐까. 강도는 아닐까. 오물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물어보겠다는 결심도 서지 않는데, 설상가상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사거리를 지나 구글 맵이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골목은 점점 깊어지고, 구글 맵이 헤매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호텔 간판도, 입구도, 빌딩의 입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번호를 확인해 봐도 우리가 찾는 건물 번호만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골목에서 헤매는 사이, 건물 뒷문으로 한 할아버지가 나와서 담배를 피워 물고 우리를 주시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우리도 그를 주시했다. 골목을 세 번쯤 왔다 갔다 하니 긴장과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일단 대로변으로 나가 보자."


해맑은 골목을 계속 빠져나가고 싶어 했고, 구글 맵은 자꾸만 이 골목이 맞다고 하는 상황. 오도 가도 못 하는 대치상황 속에 할아버지의 눈빛은 계속해서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어쩌면 선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주문을 외우면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쁜 사람일리 없다고, 기도하면서.


"두 유 노우? 디스 호텔."


할아버지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셨다. 나는 다시 한 번, 호텔 이름만 말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해맑이 그냥 나가자고 재촉했다. 해맑이 나보다 더 긴장한 모양이었다. 내가 한 번 더 호텔 이름을 말하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바뀌면서 손가락이 어딘가를 향했다. 우리가 헤매던 골목 끝을 가리켰다. 거기는 공사장인데? 할아버지가 어딘가를 가리킨 손가락을 한 번 더 흔든다. 한 빌딩의 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그 입구 위로, 호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말도 안 돼!




"오빠 저기야!"


나의 기쁜 표정과 달리, 해맑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호텔은 골목의 끝 쪽. 골목 끝 사거리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그쪽까지 가지 않았었는데 바로 그 앞에 호텔이 있었다. 호텔이라기엔 뭐랄까... 모텔만큼 조그마했다.


"그라시아스! 무차스 그라시아스!"


유일하게 아는 스페인 어로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웃었다. 경계했던 순간이 왠지 미안해졌다. 그는 그저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뿐인데 낯선 이방인에게 공연한 의심을 샀으니.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도움을 받았다.


"오빠. 할아버지가 손끝으로 마법 부린 거 아니야? 호텔이 나타나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호텔이 갑자기 나타나지? 우리가 여길 세 번을 둘러봤는데!"



호텔을 찾은 안도감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조금은 괜찮을지도 몰라.


'크리스티나 노제와 함께 우리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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