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는 은행에서 환전을 해주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대환장 환전 대작전 1

by 쏭작가



택시가 멈춰 섰다. Florida st.라고 적힌 도로표지판이 보였다. 제대로 도착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환전을 하려면 와야 하는 곳. 플로리다 거리에 왔다.


"일단 은행부터 찾아볼까?"


다행히 한 블록 앞 골목에 BANK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띄었다. 단숨에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 창구 앞에 섰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꽤 긴 대기시간을 두어야 했을 텐데 이곳은 한적하다. 전력을 아끼는 탓인지 실내 조도도 그다지 밝지가 않아 어딘가 모르게 음침한 기운도 감돌았다.


"환전을 하려고요."


돈을 꺼내려는데 직원이,


"플로리다 거리로 가세요."


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플로리다 거리로 가라고?


"플로리다 거리에 가면 깜비오가 있어요. 그쪽에 가서 하세요."


해맑과 나는 벙찌고 말았다. 환전을 하러 온 은행에서, 깜비오를 찾아가라니! 청원경찰은 친절히 손가락으로 위치까지 알려 준다. 우리가 플로리다 거리를 몰라서 여기로 온 게 아니었는데. 좀 더 안전하게 환전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은행 직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우리는 다시 플로리다 거리로 돌아왔다.



플로리다 거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환전을 하려면 이곳에서 깜비오를 찾아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대체 왜 '암 환전'을 해야 하는가?


깜비오. 스페인 어로 환전을 뜻하는 말인데, 대개 암 환전상을 일컫는 말로 통한다. 아르헨티나의 화폐는 '페소'인데, 공식환율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암 환율과 너무 차이가 심해서 아무도 공식 환율로 환전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데에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인 역사와 배경이 깊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남미의 유럽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남미에서 가장 번영하고 부유한 나라. 세계 5대 강대국이었던 나라. 이러한 아르헨티나는 외환위기로 인해 국가 경제가 파산하고 1997년과 2018년, 2번이나 1MF의 구제금융지원을 받았다. 말하자면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부잣집이 세월이 흘러 풍비박산 나버린 것이다. 그럼 대체 이 나라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나 싶어 졌다.

19세기 초,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초대 대통령이 뽑히기까지 50년 동안 정치적 진통을 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영토와 비옥한 팜파스를 바탕으로 목축업과 농업이 발달해 부를 쌓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들의 속담처럼 '신이 밤새 뿌린 씨앗을 아침에 거두기만 하면 된다'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20세기 초,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혼란한 국내 정세를 틈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후안 페론이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후안 페론의 영부인 에바 페론은 '에비타'로도 알려져 있는데, 1996년 개봉한 영화 <에비타>에서 에비타 역의 마돈나가 부른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곡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르헨티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독재자 후안 페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독재자인데 왜 사람들은 아직도 후안 페론을 사랑하는 걸까. 1946년, 페론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노동자와 빈민층을 위한 사회 복지 정책을 펼쳤다. '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자'는 소신으로 정치를 펼쳤다. 부자들과 중산층에게서 세금을 걷어 빈민층에게 주고,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렸다. 인구의 대다수인 서민들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1차 산업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2차 산업시대에서 점점 가난해져 갔다. 설상가상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후안 페론의 독재정치가 시작되었다. 권력의 장악은 물론이고 자신은 대통령 궁에서 호화 생활을 누렸다. 정치적 선동으로 시민들을 속였다. '페론주의'는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다. 결국 후안 페론은 10년 만에 군부 내 반 페론 세력의 쿠데타로 쫓겨나고 만다.


이후에도 아르헨티나는 잦은 쿠데타와 정치적 갈등으로 끝없는 혼란에 빠졌고 세계적인 석유파동까지 덮치자,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다시 후안 페론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후안 페론이 고령으로 사망하게 되고, 후처인 '이자벨 페론'이 대통령이 된다.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나라 살림이 곤두박질쳤고,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때 아르헨티나를 장악한 사람이 바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였다. 그는 악랄한 정치를 펼친다. 자국의 기업들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무리하게 1987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개최한다. 국내 산업이 무너지고 국가부채마저 폭증한다.

비델라가 5년 임기를 마친 뒤, 몇 개월 동안 같은 군부 출신의 인사들로 몇 번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대통령에 오른 뒤,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1982년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는 참패를 했고, 그나마 들어와 있던 외국 자본이 다 빠져나가 버린다.


이후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망가진 경제와 뿌리 깊은 인플레이션을 잡지를 못했고, 돈이 되는 기업을 민영화시키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환율이 떨어져 무역 적자가 계속된다. 1989년엔 물가가 15배나 껑충 뛰었고, 다음 해에 또 한 번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페소 대 달러 환율을 '1:1'로 고정시켜 버린다. 그러나 페소를 지나치게 고평가 해버린 탓에 시장에 달러화가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달러화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또다시 외채가 쌓이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부패한 정치인들로 인해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후에도 잦은 정권의 교체와 망가진 경제사정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2018년, 또 한 번 IMF의 지원을 받게 된다.


산업화의 실패, 부패한 정치인들, 실패한 정치, 그에 따라 쌓여만 가는 국가 부채, 극심한 빈부 격차,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인플레이션, 종잡을 수 없는 환율... 이것이 아르헨티나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플로리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분주했다. 쇼핑을 하는 사람들, 가판대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로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환전을 해야만 한다. 사설 환전소 간판이 걸려 있는지 확인을 하며 플로리다 거리를 왕복했다. 간판은커녕, 달러 표시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은행원이 분명히 이곳으로 가라고 했는데. 인터넷에서도 사람들이 플로리다 거리에서 환전을 했다고 했는데. 세 번을 왔다 갔다 해도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우리가 잘못 찾아왔나?"


"여기가 플로리다 거리 맞지?"


우리는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만 쏟아내며 환전소를 찾아 헤맸다. 아무리 찾아도 환전소가 보이지 않아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깜비오-


"잠깐만!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무슨 소리?"


해맑이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깜비오-"


뻐꾸기 울음소리처럼 그것은 분명히 들리는데, 어디서 들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 나도 들었어! 깜비오! 어딨지?"


"깜비오-"


"깜비오-"


"깜비오-"


발원지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여러 군데에서 들렸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깜비오를 찾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환전이었다.



아르헨티나의 화폐. 돈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무서웠던지, 여행 내내 페소를 찍은 사진이 이것뿐인 듯하다. 하하.



* 아르헨티나는 그때 그때 환율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꼭 여행 당시의 환율을 잘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우리가 여행한 이후로 잠깐 환율 상황이 좋아져서 공식 환율과 암 환율이 같아졌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여행객들이 모두 공항 환전소나 은행에서 환전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런 곳이 더 안전하긴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여행했을 때보다 인플레이션이 더욱더 극심해졌고, 암 환율은 우리가 여행했을 때보다 2배로 뛰어버렸다고 한다. 1달러 당 30~35페소 정도 되는 듯하다.
환율이 오르면 여행객들은 좋다. 현지화폐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왠지 아르헨티나의 환율이 올랐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몇십 년째 계속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아르헨티나의 극심한 인플레이션도 부디, 제발 끝나길 바란다.



아르헨티나 대환장 환전 대작전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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