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를 걸었다. 2월의 인도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고, 가끔 갠지스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기분 좋게 시원했다. 미로 같이 보였던 골목길은 하루가 지나자 숙소 주변을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강가를 벗어나면 ‘여행자의 거리’라고 불리는 좁은 골목들이 꼬불꼬불 이어지고 작은 상점들, 라씨와 짜이를 파는 가게들, 음식점들이 나타난다. 나는 혼자 느긋하게 목적지도 없이 골목을 걸었다. 곳곳에 배설물과 쓰레기가 쌓여 있고, 악취가 나기도 했다. 커다란 소와 개가 골목을 가로막고 엎드려 있기도 했다. 길거리 음식은 청결해 보이지 않았다. 카페에서도 손님이 음료를 마시며 사용한 컵을 물로 대충 헹궈내기만 하고 다시 짜이를 담아 팔고 있었다.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만을 기대한다면 이곳에서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인도에 오기 전 궁금했던 점이다. 나는 인도에 가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런 풍경들 속에 거부감 없이 젖어들 수 있을까. 나는 그곳에서 어떤 사람일까.
길을 걷다가 예쁜 지갑을 팔고 있는 가게를 발견했다. 매대 앞에서 기웃대고 있는 나에게 사장으로 보이는 청년은 안으로 들어와서 구경하라며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했다. 좁은 가게 안에는 화려한 옷과 가방, 작은 파우치, 스카프 등이 정돈되어 있었고 저렴하면서도 퀄리티가 좋아 보여 나는 구석구석 살펴봤다. 그러다 처음 봤던 지갑과 비슷한 디자인의 지갑들을 보게 되었고 몇 개를 꺼내 놓고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했다.
청년은 그런 나를 보더니 다가와 말했다.
“헤이, 친구!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을 하니? 물건을 고르는 건 행복한 일이야. 이게 뭐라고 인상을 쓰니? No problem!”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지갑 고르는 게 뭐라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을 한다는 말인가? 이게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예쁜 물건을 고르는 건 그의 말대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순간을 즐기면 되잖아.
깨달음은 순간에 도착한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잘 웃지 못하는 내가 어느 순간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일행들도 나의 표정이 여행 초반보다 밝아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웃고 있다. 이제 카메라 앞에 서도 예전처럼 쭈삣거리지 않고 그냥 웃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바라나시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 만난 인도 청년의 말은, 있는 그대로의 인도를 담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다. 두려워할 것 없다. 아무 문제없다. 현재를 즐기고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깔끔하고 향기로운 것을 좋아해서 집안 곳곳에 디퓨저를 두고 수시로 향을 체크한다. 바닥에 먼지나 머리카락이 보이면 청소기부터 집어 든다. 빨래를 할 때도 향이 짙은 섬유유연제를 세탁기에 듬뿍 넣으며 안도한다.
인도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고 그래도 아무 문제없었고 게다가 점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배설물을 밟지 않으려 요령껏 피해 다니는 일은 성가시지 않았다. 계속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생경하고 낯선 풍경 속에 나도 모르게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인상을 쓰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미리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인도에서도 없었고 한국에 있는 지금도 없다.
No probl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