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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Aug 22. 2024

인도 기차 여행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로 이동할 때 기차를 탔다. 바라나시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플랫폼의 많은 사람들은 ‘delay’라고만 되어 있고 시간도 명시하지 않은 전광판을 보고도 아무도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여유 속에 묻혀 기약 없는 기차를 기다렸다. 인솔자가 이미 3등석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기에 종이로 인쇄된 표를 들고 자리를 찾아 앉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솔자가 기차를 타기 전 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인도 기차에서는 자신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잘 비켜주지 않을 때 실랑이가 벌어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덩달아 나도 약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일행들과 떨어진 칸에 혼자 배정이 되어 인솔자는 나에게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드디어 기차가 도착했다. 악명 높은 인도 기차를 타 보다니, 긴장보다 설렘이 앞섰다. 나는 많은 인도 사람들 틈에서 재빨리 내 좌석을 찾았는데 역시나 그곳엔 버젓이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6명이 마주 보고 앉는 자리 중 안쪽 창가 자리가 내 좌석인데, 그 자리엔 친구로 보이는 인도 청년들 6명이 모여 앉아 중간에 담요를 덮은 가방을 놓고 본격적인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인솔자는 당황해서 비켜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그곳에 앉는다고 해도 그 청년들 사이에 혼자 앉아 3시간을 가야 하는 상황이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솔자는 내 눈치를 살피며 ‘다른 빈자리를 찾아볼까요?’라고 물었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아니요. 여기가 내 자리잖아요. 여기 앉을래요.’라고 말하며 그 청년들 앞에서 배낭을 멘 채 창가 자리로 들어갈 기세를 보였다. 그제야 그들은 주춤하더니 창가 자리를 슬금슬금 피해 주었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내 좌석에 앉았다. 인솔자는 다른 칸으로 건너갔고 나는 혼자 그곳에서 기차 여행을 시작했다. 좌석 위로는 침대처럼 누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조금 뒤 역무원이 베개와 이불까지 주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인도 청년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기에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조용히 그들의 카드놀이를 직관하며 인도 기차 여행을 즐겼다. 그건 생각보다 흥미진진했고 그들은 나의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분위기가 묘하게 평화로웠다. 의식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은, 대접받거나 경계하는 기분보다 느긋하고 편안했다. 역무원이 표검사를 하며 동양 여자가 한 명 앉아 있는 가운데 인도 청년들이 놀고 있는 기이한 좌석을 주시하더니 그들에게 내 자리를 침범하지 말라는 듯한 경고를 하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내 바로 옆에 앉은 청년은 엉덩이를 조금 들고 나에게서 더 떨어져 자신의 친구 곁으로 당겨 앉는 모습도 귀여웠다. 창밖으로 인도의 시골 풍경을 감상하다가 인도 청년들의 카드놀이를 관람하다가 눈을 지그시 감고 졸기도 하면서 내 시간을 즐겼다.

 그들은 한참 놀이를 하다 끝났는지, 큰 포대에서 간식을 꺼냈다. 튀긴 곡물 같은 것을 그릇에 가득 담더니 그중 한 친구가 카드놀이 하던 담요 위에 쟁반을 얹고 칼을 꺼내 토마토와 양파를 썰기 시작했다. 착착착착 칼 써는 소리와 양파 냄새가 기차 안에 퍼졌다. 기차에서 요리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잘게 썬 토마토와 양파를 튀긴 곡물 위에 얹더니 손으로 휘휘 섞어서 요리를 완성했다. 그전에 내가 과자와 초콜릿을 건넸을 때 그들은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음식을 권하지는 않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집의 식탁에 둘러앉은 듯 편하게 음식을 먹었다.

 다시 그 시간, 같은 장소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때 망설였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나도 당신들의 음식을 조금 먹어보고 싶다고. 약간 당황할 순수한 인도 청년들과 함께 나도 손으로 그 음식을 조금 집어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다.


요리까지 직관했던 특별한 기차 여행이 가끔 떠오른다. 그리고 이방인을 의식하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 여유로운 분위기가 못내 그립다. 우리는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고, 신경을 쓴다. 지인이건, 이방인이건 늘 아닌 척 모르는 척 긴장하고 촉을 세운다. 그러고는 너무 말이 많다고, 너무 말이 없다고 돌아서서 흉을 본다. 내가 만난 인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민하게 짜증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늘 있는 그대로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례하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기다림은 일상인 듯, 서두르지도 않고 주변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눈치도 보지 않았다. 기품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당당하고 담담한 여유로움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 곁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했던 것일까.

그들은 보드가야보다 더 먼 인도의 도시로 가는 중이었다. 긴 기차 여행 중 친구들과 함께할 게임을 준비하고, 간식을 준비했을 순수하고 소박한 인도 청년들이었다. 보드가야에서 내가 먼저 내려야 할 때 그들은 모두 일어서 내가 나갈 수 있게 비켜 주었고 내 배낭까지 들어서 통로까지 내어 주었다.

웃으며 두 손을 모으고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나눈 후 나는 그들과 헤어졌다. 그들도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은은하게 따뜻해서인지 기차에서 내릴 때는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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