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멈춘 자리에서 관계도 멈췄다.
아버님의 삼우재 날.
남편의 가족이 모두 우리 집에 모였다.
제사 음식이 하나둘 차려질 무렵,
셋째 누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넷째는 갑자기 대상포진에 걸려
오늘 못 온다고 하네.”
그 말투엔
이미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온 사람들의
익숙한 온도가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넷째 누나의 소식은
늘 셋째 누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음식을 모두 준비할 즈음,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님이 들어오셨다.
그녀는 식사부터 해야겠다며 자리에 앉았고,
남편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그날 집에 들르셨다죠?
혹시 무슨 이유였어요?
걱정돼서 여쭤보는 거예요.”
어머님은
한 숟가락 뜨던 떨리는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말을 삼킨 듯한 표정이었다.
남편의 목소리는
분노보다는 혼란에 가까웠다.
“저희가 집을 비운 시간이었잖아요.
미리만 말씀해 주셨어도…
당황할 일이 없었을 거예요.”
그는 설명을 요구하기보다
그저 이해하고 싶은 상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잠시 후,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집을 나섰다.
그날 이후,
남편과 어머님의 관계는
천천히 멀어져 갔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고 조용한 거리감이었다.
전화도, 안부도, 명절의 인사도
서로에게 닿지 않았다.
어머님은 넷째 누나와 함께 공동 소유의 아파트를 구매해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는 있으니까
삶을 함께 정리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시간.
다만, 오랜 시간 이어져온
가족 내부의 습관과 관계의 결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가족에게 들은 얘기로는
누가 중심이 되고 누가 양보하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리듬이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저릿했다.
어떤 관계는 끊어지는 순간보다
다시 이어지는 방식에서
더 많은 슬픔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래된 그늘 속에서
각자가 익숙했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