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려만 주세요

by dear M

공증받은 차용증을 정리하던 중,
현관 앞 벨이 울렸다.
모니터에 비친 건 깔끔한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었다.

“누구세요?”
“사장님… 계신가요? 꼭 좀… 전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목소리는 단정했지만, 숨은 떨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화면에서 보던 모습보다 더 정돈된 차림의 여성이
현관 앞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사장님…”

남편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봤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여성을 겨우 일으켜 거실로 안내했고,
그제야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버님께 돈을 빌려온 사람입니다.”

공증된 차용증 속 이름.
맞았다.

처음엔 소액이었지만,
금액이 커지면서 이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시키시면… 다 하겠습니다. 제발…”


아버님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들어간 금액들.

그 돈에 대한 증여세는 고스란히 자식들의 몫이 되었다.

아버님은 이자를 받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금’만으로도 이미 너무 큰 금액이었다.


남편의 바지를 붙잡고 울먹이며 애원하는 모습은
돈을 빌린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매달리는 인간의 몸짓에 가까웠다.

남편은 단호히 말했다.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돌아가세요.”

하지만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장님, 사모님…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제… 목숨이 걸렸습니다.”

말은 점점 흐트러졌고, 눈빛엔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그 집요한 절박함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돌려보냈고,
며칠 후 또 다른 여자가 찾아왔다.
이번엔 나이가 훨씬 많은, 역시 정장 차림의 여성이었다.


“며느리 앞으로 큰 보험을 들면,

아드님이 금방 들어오실 거예요.”

아버님 생전에 우리 모르게 아버님에게 보험을 권유했던 그 사람이 맞았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버님의 돈을 빌린 사람 아니라여러 사람이었다는 .

어떤 이들은 공증된 문서대로 변제했고,
어떤 이들은 조용히 사라졌고,
첫 번째로 무릎을 꿇었던 그 여자는…
결국 법정으로 갔다.

그날 이후로, 현관 앞 초인종은 잠잠해졌지만
우리 안의 긴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돈보다 무서운 , 돈에 얽힌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목, 일 연재
이전 19화사라진 문서, 남겨진 숨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