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15분.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나의 점심시간이 예고된다.
J의 런치 야외활동(Lunch Recess) 준비를 돕고 나면 우리들만의 긴박한 ‘휴식 릴레이’가 시작된다. 동료 Miss G가 내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다가오는 순간 보이지 않는 바통이 건네지고 그때부터 비로소 나의 30분이 흐른다.
똑딱똑딱. 시계는 정직하다.
11시 45분이 되기 전 나는 서둘러 도시락 가방을 챙긴다. 다음 주자인 Miss C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숨 가쁘게 달려가 바통을 넘겨주는 것까지가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각자의 ‘고무줄 시간표’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15분짜리 커피 브레이크를 점심시간처럼 사용한다.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동료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
“내가 늦으면 그냥 네 교실로 가.”
그 한마디에 시간의 무게는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또 어떤 이는 바통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자신만의 의식을 시작한다.
화장실에 들르고 마주치는 동료들과 긴 인사를 나누고 도시락을 정성껏 데운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기 직전 그제야 타이머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약속된 30분이 ‘끝나면’ 다시 안부 인사를 하고 화장실에 들르느라 다음 사람에게 바통이 넘어가기까지는 결국 50분이 흐른다.
그래서 묻고 싶다.
점심시간 30분은
숟가락을 드는 순간부터인가?
아니면 자리를 떠나는 순간부터인가?
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어다닌다.
하지만 어떤 이는 여유롭게 걸어오며 묻는다.
“왜 안 가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 무심한 질문 앞에서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내가 마주하는 아이들은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 단 1분의 공백도 불안과 돌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알아서 잘 있을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심한 돌봄이 없으면 평범한 일상조차 버거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한순간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대신 ‘릴레이’를 한다.
시간 약속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책임이고 누군가의 기다림이며 동료와 아이들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다.
내 배꼽시계가 정확히 울리듯
내 뒤에서 바통을 기다리는 누군가의 시간도 같은 속도로 흐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아이들의 시간도 함께 흐르고 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그대들의 점심시간 30분은
대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