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별 - 정승환
잘 기다릴 수 있나요?
저는 잘 기다리는 편이에요.
기다려야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기다림 끝에 얻게 되는 기쁨도 크다는 걸 알거든요.
얼마 전, "다음에 가자, 가자...!" 말만 여러 차례하고 시간이 맞지 않아 벼르다가 엄마와 함께 대형마트에 다녀왔어요.
엄마께서 양말을 구경하시는 동안에, 저는 햄스터를 구경하는 2~3살 정도 된 아기와 아기를 돌보는 할머니를 관찰했습니다.
그 아기의 할머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호응을 해주시면서, 아이가 충분히 햄스터를 구경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계셨어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쭈그리고 앉아서요.
한 5분쯤 뒤에, 할머니께서 '이제 한 번만 더 보고 가는 거야~'라고 말씀하셨고, 아이도 동의했어요.
그리고 그 약속대로 할머니가 먼저 복도 쪽으로 걸어 나오셨고, 아이가 따라 나왔죠.
하지만 아이는 햄스터를 더 보고 싶었는지, 할머니가 보이는 곳과 햄스터가 가까운 곳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1분 정도 기다려 주다가, "할머니 먼저 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뒤돌아서 3걸음쯤 갔을 때, 아이가 응석을 부리듯이 살짝 울듯 말 듯 한 소리를 내며 할머니에게 뛰어갔어요.
할머니가 팔을 번쩍 벌려 아이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할머니 바로 앞에서 안기려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손에 들고 있던 애착 물건인 자동차를 놓쳤어요.
동시에 아이는 참으려던 울음을 툭 터뜨렸습니다.
할머니는 아이를 안아주면서, 자동차를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고,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어요.
그렇게 할머니가 아이를 기다려 주고,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저는 한참 엄마께서 양말을 다 고르기를 기다렸습니다.
이현경 저서 『태국 문방구』 53쪽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일상에서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의 시선이 있어 세상의 평범한 것들이 조금 더 특별해진다.
기다리는 게 힘들고 싫은 엄마가 느린 저를 다그치지 않고, 엄마의 힘듦을 공유해 주는 것,
우리가 우리의 다름으로 인해 대차게 싸우고 충돌했던 순간들,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걸 기다려 주는 할머니,
더 오래 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할머니,
아이가 당신한테 뛰어 올 때까지 멈춰 서서 기다려 주는 할머니,
엄마께서 양말을 고르는 동안 가만히 서서 주변을 관찰하며 기다리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일들을 '기다림'이라는 키워드로 묶어서 관찰하니,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기다림은 기본적으로 지루하고 지난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던 걸 잠시 멈추고, 그 사람 그대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기다림'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무엇으로서의 누군가가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알아차리고, 그 사람이 원하고 그 사람한테 맞는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자의적이든, 타의든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멈춰서 기다릴 때,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고 관찰하게 될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그 사람으로 바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무언갈 받아들이고 제힘으로 결정 내리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그는 언젠가 설렘 가득한 얼굴로 달려와 안길지도 몰라요.
저는 늘 빨리 무엇이 되고픈 마음이 커서, 그동안 저를 기다려 주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에서야 느린 저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나 봅니다.
보채지도 채근하지도 않고, 제게 맞는 속도로 유유히 흘러가고 싶어요.
그래야 타인이 원하는 제가 되지 않고, 정말 저답게 바로 설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제게 그렇게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될래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기다려 줄 줄 아는, 사람을 품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어요.
보채지도 채근하지도 말고 지금까지 흘러온 속도 그대로 유유히 흘러가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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