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Soud of your heart - Seori
어떤 사랑은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열렬해서 아예 활활 타버리길 바라다가, 안쓰러워 꼭 알맞은 온도로 함께 사랑하게 되길 염원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김겨울 저서 『아무튼, 피아노』에는 피아노를 너무도 사랑한 저자의 열렬함이 담겨 있어요.
김겨울 저서 『아무튼, 피아노』 89~90쪽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보다 쓸 때, 춤을 볼 때보다 출 때, 피아노를 들을 때보다 칠 때 나는 구석구석 사랑하고, 티끌까지 고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있게 된다.
김겨울 저서 『아무튼, 피아노』 129쪽
짝사랑에 빠진 이의 어설픈 연주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근사하다.
조용한 연습실에서 귀로만 듣던 곡을 더듬더듬 연주할 때, 내가 알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자꾸 틀려서 답답하고 나 자신이 한심해도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기쁨이 있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피아노를 사랑해서 피아노를 치는 모든 사람은 이 기쁨 속에서 소리를 듣는 삶의 특권을 가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연습실에서는 유창한 쇼팽뿐만 아니라 느릿느릿한 쇼팽도 울려 퍼지고 있다. (...)
우리의 느릿느릿한 쇼팽도 예술이며 그 안에는 아마추어의 미학이 있다.
아마추어의 미학이란 유창한 곡 해석을 의도치 않게 배제하는, 악기와 곡에 대한 애정으로 더듬더듬 이어지는 불완선의 미학이다.
아마추어가 연주하는 곡은 매끄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역설적으로 그 더듬거림이 악기와 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김겨울 저서 『아무튼, 피아노』 129쪽
기타를 산 이유가 단순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독자에게 한 거짓말이자 내가 나한테 한 거짓말이다.
나는 클래식 피아노를 치고 싶었지만 그것으로 내 커리어를 삼을 수는 없을 거란 자명하고, 슬픈 사실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
그래 놓고, 그게 아닌 척을 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것은 늘 비밀이었다.
남들에게 비밀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비밀이었다.
나는 늘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고 동시에 피아노 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피아노를 다시 치는 게 무서웠다. (...)
그걸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동안에도 모든 게 어설펐고 늘 부끄러웠다.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피아노를 피해 다니면서. 또 피아노로 부족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면서, 나는 내가 나를 속일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회의 몫으로 남겨두게 되는지를 배웠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서는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아무튼, 피아노』 129p. - 김겨울, 코난북스
말하는 삶이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일부를 떼어내 전달하는 일이고, 그 이전에 침묵의 일부를 떼어내 전달하는 일이고, 그 이전에 침묵의 시간만이 나를 정의할 수 있으며, 듣는 시간만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듣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듣기 위해 침묵해야 하며, 침묵의 힘으로 말해야 한다.
더 자세히, 더 세심히, 더 온전히 들어야 한다.
나 자신의 소리도, 다른 누군가의 소리도.
김겨울 작가님은 '피아노'였고, 저한테는 '글'이었습니다.
'글'로서 밥벌이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너무 길고 처절한 절망적인 짝사랑이었어요.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글로 먹고 살 생각은 없다고요. 하지만 모두를 속이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최근 다시 주 5회 이상 글을 쓰면서 깨달았어요.
누군가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도, 세상의 통념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은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마저도 저는 글이 좋습니다.
제 영혼이 담긴 조각을 세상에 내보이고, 저를 다듬어 가는 일련의 과정이 지난하기도 하지만 그것만큼 벅차고 설레는 감동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게 너무 좋습니다. 쓰면 쓸수록 더 좋아져요.
이상이나 윤동주,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발자크, 조앤 롤링처럼 위대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작가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저 꾸준히 쓰며 내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도 있죠.
<글을 써야 작가>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습니다.
당시 글쓰기를 놓고, 다른 일을 찾고 있던 때라 숨죽여 울어버렸더랬지요.
글을 원 없이 써보지도 않고, 그럴 엄두조차 내지 않았던 저를 반성하게 만든 문장이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피아노'에 자꾸 '글'을 대입해서 읽게 됐습니다. 많은 대목에서 울컥해서 울었어요.
저는 요즘 거의 매일 글을 씁니다.
썩 만족스럽지 않고, 이상보다 못하고, 거칠고, 날 것 같더라도, 글을 내놓고 있습니다.
놓아버렸을 때의 비탄과 절망보다, 열렬한 짝사랑이 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느껴요.
제가 저를 속이면서 버리고 후회한 시간이 깁니다.
결국엔 내 직감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고, 내가 선택한 일을 내가 끌어간다고 느낄 때, 그다음에도 나를 믿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잣대 어린 시선과 말보다 제 삶이 중요하단 걸 이제야 몸소 체감합니다.
'~해야 한다'를 내려놓고, '지금은 이걸 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선택해서 하고 있어요.
점점 그걸 선택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 마음이 하고 싶다고 하는 일을
선택해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