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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Jan 16. 2022

1920년대를 상상한다는 건,

경성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내국인의 시선에 의한 것들이 많다. 나도 그 시절을 상상해본 적 있었지만 내국인 아닌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개방된(?) 순간이었는데 왜 외국인들이 경성에 거주했을 거라는 생각, 거주 형태들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걸까.

작년 봄에 세계 책의  행사  하나로, 내가 애정 하는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책방에서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강연이 열려서 참석했었다. 최지혜 교수님은 (과거에 내가 매료당한) 덕수궁 석조전 실내 복원도 하셨던 터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했었지. 딜쿠샤 주인 부부에 대한 설명과 재현 과정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건 딜쿠샤에 다녀왔어야 했어!라는 마음이 가득해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딜쿠샤 진짜 가야지 가야지 가야 하는데 하다가 9개월이 지난 드디어, 오늘 다녀왔다. (원래 지난 금요일에 가려고 했었…)

딜쿠샤에 입장하여 둘러보는데, 최지혜 교수님께서 강연하셨을  말씀해주셨던 내용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산스크리트 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의미인 딜쿠샤에서 일어나고 경험했을 일들을 잠시나마 상상해보았다. 행촌동에 거주한 사람들과 켜켜이 쌓아온 시간들, 3.1 운동의 순간들, 가택 연금이 되었을 때 바라본 광경과 심경.. 들을 떠올려보았다.

집주인인 앨버트 테일러는 광산 채굴권자이자 테일러 상회의 운영자이자 미국 AP통신 해외통신원으로써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해외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 (와.. 추방되어 돌아가는 길의 지도를 보고 할 말을 잃음. 현실판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여기 있었네. 그 건 여행이자 모험이었는데, 이건 추방이니.. 그 길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내 삶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라는 그리움으로 조선의 해방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tmi) 예전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글을 써보라고 엄청난 압박을 받던  시기에 우연히 제암리 학살 사건을 알았었다. 그때   사진을 통해 자극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알지 못하는  알게 되어) 치졸한 보복 행위인  사건을 배경으로 시대 단막극을 쓰려고 시도한  있었다. (물론 시도만!) 근데 내가 자극받은  사진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또한 앨버트 테일러와 프랭크 스코필드 덕분에 숨겨질 뻔했던  사건을 널리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강슨생의_사생활 #딜쿠샤 #dilkusha #기쁜마음의궁전 #딜쿠샤경성살던서양인의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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