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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Dec 30. 2021

성장의 속도가 다른 아이들

지금은 느리게 걷고 있을지라도

2010년에 태어난 둘째 딸은 자주 아팠다. 열도 자주 났고 경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경기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돌 이전의 경기는 예후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고 해서 열심히 대학병원에 다니면서 치료했다. 뇌신경과에 다녔는데 거기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왔다. 거동이 불편한 친구들이 있어서 뇌신경과는 아이를 데려오지 않아도 약을 탈 수 있었다. 나는 차 타기를 힘들어하는 둘째를 두고 혼자 병원까지 운전해서 왔다.


그날따라 대기가 길어졌다. 예약을 해두고 오지만 그런 날이 있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이가 귀여워, 이쁘다. 하고 물었다. "몇 개월이에요?"

유모차에 누워있는 조그만 아이는 생후 24개월 전후로 보이게 작았다.

엄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7살이에요"

나는 순간 너무 미안해졌다. 질문부터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단순 호기심으로 인한 질문이나 인사말도 조심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아이는 7살까지 치료를 받았다. 점점 자라면서 열도 안 나고 경기도 안 하고 씩씩하게 자랐다.

이렇게 길게 뇌신경과를 다니는 동안, 많은 장애아이들을 보았다.

경기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인 카페에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글을 쓰고 읽으며, 나도 그 속에서 같이 엄마로서의 괴로움을 나누며 버텼다.

소아 경련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대부분 뇌랑 관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경기 후유증으로 자폐, 뇌전증, 뇌성마비까지 오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단순 뇌전증은 약을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먹으면 겉으로는 표시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엄마들이 학교를 보내는데 3월에 담임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글이 많았다. 대부분의 댓글이 <말할 필요 없다, 말해봤자, 담임 선생님은 색안경을 끼고 우리 아이를 볼 것이고, 비상상황 시에도 경련은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불시에 생겨서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적혀있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당연히 담임 선생님에 따라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비밀을 지켜주시고 아이를 보호해 주신다. 그래서 알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화장실에 오래 있다면, 위험한 상황을 예상할 수도 있어야 한다. 실제로 2006년,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아이가 화장실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친구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고, 그 아이는 아침에 뇌전증 약 복용을 빠트리고 학교에 와서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때서야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뇌전증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나의 아픔도 나누며 교사로서의 사명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픈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학교에서 받을 편견에 대한 상처를 걱정하셨다.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속도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학급을 만들어야지 생각했다.


1. 특수아동 지도

사실 이전에도 특수아동을 학급에서 맡은 경험이 있다. 내가 첫 번째 맡았던 아이는 6학년 미니(가명)였다. 미니는 정신지체로 지능 연령이 매우 낮았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소통이 되지 않았다. 미니는 몸도 크고 키도 컸다. 하지만 커다란 아기처럼 너무 귀여웠다. 지금은 이 정도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은 도움 선생님이 계신데, 그때는 도움 선생님이 도와주는 시스템이 없어서 오롯이 통합학급반 수업이 없을 때에는 나 혼자 돌보고 밥도 먹여야 했다. 미니는 몸짓과 소리로 아이들과 소통했는데, 나중에는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미니가 뭐가 필요한지 알 것 같이 친해졌다. 아이들도 나를 많이 도왔다. 혼자서 생활이 어려운 미니이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아이들은 함께 미니를 도우며 뭉치고 성장했다. 상처를 주는 말을 조심하고 서로에게 응원을 해주는 말을 해주었다. 미니는 태어날 때부터 아팠다. 이것은 미니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았다. 아이들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처음부터 미니가 친구들과 잘 지냈던 것은 아니다. 3월 초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미니는 수업을 하다 말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학부모님들은 미니가 내는 소리 때문에 앞으로 우리 아이의 수업이 방해될까 봐 걱정하셨다. 어린 20대 선생님은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미니는 매일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들께서 너무 많이 오셔서 미니가 놀랐나 봐요. 제가 일주일간 지켜본 미니는 수업시간에는 아주 조용합니다. 친구들과도 잘 지냅니다. 오히려 미니가 있어서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심합니다. 6학년 사춘기 아이들에게 미니의 존재는 큰 힘을 줄거라 믿습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미니는 나와 친구들과 익숙해질 때까지는 돌발행동을 보였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친구를 때리며 의사표현을 했다. 미니가 그런 행동을 할 때에는 안 되는 행동은 안된다고 몸을 잡고 안아서 멈추게 하며 가르쳤다. 미니는 점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도 알고 친구들도 알아보았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소리로 우리가 아주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도움 선생님이 없었기에 미니가 우리 반이 되면서 학급 구성은 미니에게 쏟을 교사의 도움을 고려하여 배정되었다. 그래서 우리 반은 정말 최강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그 해 아이들에게 지금도 너무 고맙다. 내가 쏟은 사랑의 몇 배를 돌려받았다. 요즘에는 도움 선생님이 있지만, 그래도 특수아동이 있는 학급은 여전히 고려하여 같은 반 아이들을 배정하고 있다.


미니는 우리와 함께 수학여행도 갔다. 미니가 의사소통이 어렵고 밤에도 나 혼자 챙길 수 없기에 어머니도 같이 수학여행에 갔다. 지금은 도움 선생님이 함께 가주신다.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도 우리 반 친구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잘 놀았다. 우리 반은 참 분위기가 좋은 반이었다.


2. 사회성 발달이 늦는 아동 지도


요즘은 도움 선생님께서 교실에 오셔서 챙겨주시기에 특수아동지도는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교실에는 성장의 속도가 다른 아이들이 눈빛을 초롱초롱 나를 보고 있다.


매년 겪는 일은 공부의 성장 속도는 빠르나 사회성 발달의 속도가 느린 아이들 지도이다. 이런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 '같이 놀자'는 말 대신 친구에게 다가가서 툭 치며 반응을 이끌어내고, 속상하고 화나는 마음도 조절하는 법도 모른다. 친구들은 처음에는 같이 놀다가 마음이 상하고 그 친구와 놀기가 싫어지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왕따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이 또한 성장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성의 성장은 성인이 되어서 완벽해진다고 볼 수 없으나, 어느 정도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사회성이 느린 아이들은 학급에서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눈치 빠르게 친구의 감정을 읽고 쉽게 마음을 얻어 인기가 좋은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교사와 부모가 함께 노력하면 좋아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꼭 부모님과 협력하여 개선하기 위해 상황을 알리고 학급에서도 주시하며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극제는 같은 또래 친구들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와 노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활달하고 성격이 밝은 아이들에게 몰래 비밀 미션을 준다.

"선생님은 00 이가 친구랑 노는 법을 잘 몰라서 놀지도 않고 혼자 있는 상황이 걱정이 된단다. 선생님을 도와줄 수 있겠니? 그 방법은 네가 점심시간에 놀이를 할 때 00 이도 함께 같이 놀며 노는 법을 가르쳐주는 거야."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부탁은 '뭔가를 잘 해내고 있는 학생들이 받는 칭찬'과 같은 것이기에 대부분 흔쾌히 미션을 받아 수행한다. 00 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웃으며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같이 행복해진다.


그렇지만 그런 도움 친구들도 매일 그런 미션을 수행할 수 없다. 본인들이 놀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의 칭찬이 또 중요하다. 00 이와 친구들이 잘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혼자 있는 친구들 없이 다 같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잊지 않고 칭찬한다.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모두 같이 노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구나."

"혼자 있는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하고 불러주었던 수진이를 정말 칭찬하고 싶어."

"친구랑 잘 못 노는 친구들은 함께 어울려 노는 연습이 필요해. 이렇게 우리 반 친구들이 함께 잘 노는 모습을 보이니까 선생님은 내년에는 각자 다른 반으로 가도 잘 지낼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

발표를 잘 할때, 숙제를 잘해올 때 보다 몇배의 칭찬으로 놀이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친구들 모두 다 끼워주는 친구들을 칭찬했다.


선생님은 우리 반이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친한 단짝뿐만 아니라 모두가 내 소중한 친구라는 마음으로 대해줬으면 좋겠고, 우리 반이 들어오면 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따뜻한 교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말해왔다.

다른 것에는 관대하겠지만, 아래 두 가지는 무섭게 혼내겠노라고 말했다.

1. 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2. 친구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


숙제를 좀 못해와도 장난을 쳐도, 수업시간에 떠들어도 크게 혼내지 않았다. 주의를 줄 뿐.

하지만, 위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아주 엄하게 대했고, 부모님과도 상담을 했다.

어쨌든 교사는 학교에 있을 때는 부모의 마음으로 보호해야 하며 안전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의 안전도 정말 중요하다.

사회성 발달이 느린 친구들은 몸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화가 날 때면 몸으로 공격하여 싸움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몸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야 한다.

성장의 속도가 다른 아이들이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성이 풍부한 소위 말하는 인기 좋은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친구들을 돕는 경험은 커다란 힘이 된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배우게 한다. 에디슨도 왕따였고, 아인슈타인도 뇌전증 환자였다. 반 고흐, 베토벤도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지만 이겨내고 세상의 빛을 선물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라고 해서 패배자인 것도 아니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아이들에게 에디슨도 선생님 말도 안 듣고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왕따였다고 말해주면서 나보다 성장이 느린 친구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준다. 지금은 늦지만 언젠가 세상에 빛을 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

모두가 스스로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만이 희망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지금은 느리게 걷고 있을지라도 꼭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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