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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Mar 03. 2022

6학년을 맡았다

아이들과의 둘째 날

선생님들이 6학년을 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6학년 선생님은 수학여 행 준비, 중학교 원서 작성,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 정리 등 중요한 업무를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피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어른이 되어가고 이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서 학교 폭력도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학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학년을 좋아하는 선생님들도 있다. 6학년은 우선 말이 잘 통한다. 아이들과 감정으로 교감만 되면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다. 자기 통제도 저학년보다 잘 된다. 수업 내용도 깊이가 있고 재미가 있다. 발표력도 좋아서 토론을 해도 재미있다. 세상에 관심도 많아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6학년은 무엇보다 교사가 친구처럼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나도 1년이 따뜻하고 즐겁다.


오랜만에 6학년을 맡았다. 5번째 맞는 6학년 담임이다. 남포동 시장 옆의 학교에서 6학년을 두 번 했고, 통영의 바다가 보이는 학교에서 6학년을 맡았다. 2015년 부산 다대포의 어느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6학년을 맡았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맡았던 아이들은 다 너무 착하고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이었다. 중간의 사건 사고들은 여느 6학년 선생님들처럼 겪었지만, 아이들은 사고를 치면 미안해하며 잘 마무리했기에 나는 6학년을 맡았을 때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번에 맡은 6학년들도 참 좋았다. 교실에 들어서면서 조심스레 웃, 수줍게 말 거는 모습이 기분 좋았다. 2학년을 가르치다 6학년에 와서 그런지, 교실이 참 조용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관찰하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 있으면 질문하세요"


긴장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든 아이가 한 첫 질문은 "선생님의 교육 스타일이 궁금합니다."였다.


그 순간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뒤에 선생님이 전에 맡았던 친구들이 선생님을 소개해 준 글들을 붙여 놓았는데 읽어보았나요?"

"네!"

"거기에 보면 있어요! '도망가'라고

선생님은 그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뒤에 적은 2학년 친구들의 표현들을 보고는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가 꾸려나가야 할 길은 이제 시작이기에 양파처럼 조심스럽게 한 겹 한 겹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6학년은 부끄러움이 많아지고 소심해질 수 있는 학년이다. 그래서 오늘도 줄줄이 발표를 시켜서 모두 말하게 하고, 함께 노래도 불렀다. 목이 터져라 부르는 2학년들과 달리 들리지 않을 정도의 개미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빨리 같이 목소리를 내어 노래 부르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급훈을 정해 볼까?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걸로!"


참 조용한 아이들이다.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내가 의견을 냈다.

"깨끗하게 살자, 어때요? 선생님은 청소가 어렵더라고"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내가 또 의견을 냈다.

"공부는 신나게, 발표는 많이" 어때?

"에이~~ 공부가 어떻게 신나요!"

"이제부터 신날 거야! 기대해 봐! 그리고 이제 우리 반은 발표를 많이 하는 거다, 이게 선생님의 교육 스타일이야."


아직은 서로 어색하고 어렵지만 앞으로 자신 있게 토론하는 아이들로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을 담다.

결국 급훈은 내 뜻대로 정해버렸다.

정말 민주적이지 않게 말이다.


어제는 줄줄이 발표로 모두가 자신을 소개했고, 오늘은 아침을 뭘 먹었는지에 대해 모두가 발표했고, 내일은 앞으로 읽을 책에 대해 다 발표할 것이다.

다행히 목소리는 작아도 다들 발표를 피하지 않았다.


6학년은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분위기에 조용해서 발표가 없는 교실이거나 발표를 적극적으로 하며 학생들이 이끌어 나가는 교실.

언뜻 보면 전자가 편할 것 같지만 교사는 수업을 혼자 이끌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 후자가 훨씬 수업하기에 편하며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나는 올해 6학년을 맡았다.


점심시간,  급훈을 직접 써보겠노라고 납작붓을 들었더니,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일필휘지로 완성되는 급훈에 선생님 대단하다며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 녀석들, 입에 발린 칭찬도 잘하는 아이들이군.

그래, 이 맛에 내가 선생님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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