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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Jan 11. 2022

우리 아이 훈육하기

진짜 바꾸고 싶은 것 한 가지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교육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마음의 뿌리 키우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꼭 말해줘야 할 말이 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완벽한 사람은 없어."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사과하고 스스로 고치려 애쓰면 된다.

실수를 너무 강하게 탓하면 아이는 소심해진다.

"선생님한테 잘못해서 혼날 수도 있지.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는 아이가 어디 있어~

마음에 오래 두지 마. 모래에 적어서 보내버려"

아이들이 나한테 혼나서 기죽어 있으면 그게 참 싫다.


내가 가장 무섭게 엄하게 지도할 때는 친구들의 몸이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인데, 자신이 잘났다고 친구들을 놀리거나 괴롭힐 때는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봐, 너 자신은 남을 비난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니?"


이 말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꾸짖음이나 벌보다 효과가 있었다.


"너 자신을 봐, 친구보고 못난이라 놀리는 모습은 누구보다 못난 이지 않니?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만났을 때, 진우가 너보다 키가 더 클지도 모르는데 꼬맹이라 놀린 거 그때 미안할 수 있으니, 지금 사과하자.

방금 너는 친구에게 욕을 한 게 아니고 미래의 너 자신에게 욕을 한 거야. 나쁜 말은 다 마음에 쌓이거든."


본인을 돌아보게 하는 지도가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이런 말이 아이들에게 먹히려면 평소에 허용적인 선생님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잔소리만 하고 있는 선생님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평소에 나를 칭찬해주고 인정해주시고, 우리에게 재미난 것도 많이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의 훈육이 가슴에 꽂힌다.


그러니까.

<우리 선생님은 평소에는 너무 좋은 선생님인데 다른 친구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 주는 것은 엄청 화내셔>

하고 아이들이 마음으로 인정을 해주어야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숙제, 일기를 안 쓰거나 지각을 하는 정도는

"다음부터는 꼭 하자" 정도로 가볍게 주의를 주고 넘어가야 하며, 많이 웃어주어야 한다.

선생님도 부족한 점이 많고 맨날 실수 투성이다.

"선생님이 실수했어. 어제 가정통신문 나눠주는 것을 깜박했네. 미안해"

우리는 모두 실수투성이인 사람인 것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함께 손잡아주고 격려해주며 부족한 점을 보듬어주는 것이 친구이고, 앞으로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가 부족한 엄마임을 인정해야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허용적인 엄마여야 훈육이 먹힌다.

먼저 엄마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겠다.

나는 스마트폰 중독 엄마이다. 설거지와 청소는 뒤로 미루는 엄마이다.

퇴근만 하면 맥주를 마시는 엄마이다.

택배는 어찌나 오는지 우리 집 쓰레기는 다 엄마가 산다.

나는 퇴근하고 맥주를 마시고 쓰러져 자는 일상을 반복했다. 맥주는 나에게 위로였고, 선물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술 마시고 자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고 놀았다. 휴대폰 게임도 했다.

건강검진에서 요산 수치가 정상수치를 돌파하자 '엄마는 알코올 중독'임을 인정하고 단주 선언을 했다.


단주를 하면서 나에게 스스로 주문했던 것은 '술 끊는 거 말고 다른 것은 허용하자'라는 거이다.

단것도 먹고 탄산수도 마시고, 하고 싶은 것 다하는데 딱하나 맥주만 마시지 말자.

다이어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이 쪘다.

퇴근 후에는 술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나는 5개월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어른들도 이렇게 한 가지를 변화시키기가 어려운데 아이들도 얼마나 어려울까. 그래서 나는 훈육할 때 딱 한 가지만 집중한다.

학교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지도할 때 <친구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처럼.

나에게서 한 가지를 바꾸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우리 첫째는 나 몰래 새벽 2시까지 폰 게임을 했다. 폰에 시간 체크 앱을 설치해 놓았지만 내가 너무 게을러 매일 검사하는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이는 폰 게임에 조금씩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새벽에 아이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갔다가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등짝을 갈겼다.

얼마나 사용했는지 앱을 확인하고는 더욱 기가 찼다. 기말고사 기간에도 꾸준히 3시간 넘게 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이가 원해서 기말고사 시험 준비 기간에 <스우파 콘서트>를 예매해서 함께 보러 갔는데, 보고 온날에도 5시간 30분이나 폰을 사용한 것이다.


다음날 아이에게 엄마가 때린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이는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울었다. 아이와 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의논했다. 아이는 스우파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하기 위해 애쓴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아이는 폰이 옆에 있으면 자꾸 보고 싶다고 하교 후 아래층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폰을 두고 오는 방법을 제안했다. 아이 옆에서 폰이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아이의 다른 실수나 잘못에도 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아이는 한동안 내가 술을 끊기 시작했을 때처럼 어떤 즐거움을 찾아야 할지 모를 것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통통 아이라 맛있는 디저트도 함께 주문하고, 아이가 슬라임을 좋아해서 다양한 슬라임을 사주었다. 차라리 영화를 보라고 넷플릭스도 텝에 깔아 주었다. 네일 놀이하라고 저렴한 네일 스티커를 사 주었다.


공부를 잘하려면 쌓인 스트레스를 꼭 풀어야 한다. (아이는 과외 선생님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 때문에 나는 공부에 관해서는 아이를 믿고 응원한다. )


나는 5개월째 단주 중이지만 아직도 술이 그립다. 다른 것에 아무리 몰입해도 그만한 도파민을 끌어올릴 대체제가 없다. 그러니까 '중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같다. 아이들의 폰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너무 재미있고 자극적이라 대체제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폰 게임을 잊어가게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그리울 것이다.

그러다가 나의 맥주처럼 점점 희미하게 잊어가겠지.




우리 둘째는 키가 너무 작고, 밥을 안 먹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너무 키도 크고, 살도 쪄서 아이가 조그마한 게 너무 귀여워서 나중에 크겠지, 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이 "You are so small" 했다고 자신도 성장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아이는 2010년 1월 생이고 친구들보다 일찍 태어났는데 반에서 제일 작았다. 143cm에 35킬로이다.

우리는 함께 키 키우기에 애쓰기로 했다. 잘 먹기, 푹 자기, 운동하기

둘째는 키 크는 데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은 다 허용한다. 아이는 엄마가 뭘 먹으라고 할 때가 가장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그리고 씹어 넘기는 게 힘들어 입에 물고 있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떠먹인다. 내가 떠먹이는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배고프면 먹는다. 습관 나쁘게 들이고 있어'하며 다 큰 아이를 떠먹인다고 야단치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이가 먹는 게 힘들다고 엄마 도와달라고 외치지 않는가.

혼자 먹는 건 학교 급식시간에 먹지 않는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당연히 혼자 먹을 수 있다.


지금은 성장기라 먹는 것에 소홀할 수 없고, 아이는 먹는 게 스트레스라고 공부보다 힘들다고 외치지 않는가. 나는 돕고 싶었다. 나는 아이가 정해진 양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떠먹이며 못 삼키면 물을 떠다주며 삼키라고 하며 겨우겨우 먹이고 있다. 지금은 성장기인데 고기를 먹는 것을 힘들어한다. 소화기능이 약한지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뇌 MRI, 뇌하수체 호르몬 검사까지)를 다 해봤으나 다행히 정상이었다. 한약을 먹였다. 그래도 효과는 별로 없었다. 나는 정성을 담아 아이가 먹는데 힘을 보태어 주며 먹여야 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아이는 집을 어질러도 혼나지 않는다. 아픈 아이를 키워 보신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건강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화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화가 나는 엄마는 아이가 건강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것도 그 다음이다.  둘째는 하리보를 먹고 껍질을 온 집에 널어놓았는데 나는 이것을 치우면서 '우와!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많이 먹었구나! ' 싶은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하루에 여러 벌을 입고 아무 곳에나 벗어놓은 옷이 발에 걸리자,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야."라고 생각을 했다.

(물론, 이건 내가 성격이 깔끔하지 못해서 이기도 하다.

많이 힘들 때는 "00야, 엄마 혼자 이거 다 치우면 너무 힘들어" 정도로 하소연을 해본다.

아이들은 어지르면 안 되고 본인이 치워야 한다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하기 싫거나 어리광을 피울 뿐이다.

오로지 내가 아이를 혼낼 때는 '먹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이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모범생이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다, 라는 말을 듣는데 집에서 정말 엉망이라고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있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린다.


학교에서 8시 반부터 2시 즈음까지 마친다고 볼 때, 6시간 정도를 학교에서 보낸다.

그러한 아이들은 많이 양보하고 참는다. 혼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하고 싶은 것도 누른다.

충분히 스스로 최선을 다해 애쓴다.

그리고 집에 오면 한없이 늘어지고 게을러지고 싶을 것이다.


나는 가정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학교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아이가 더 걱정이다.

학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규칙도 지켜야 하고, 그중에 공부까지 해야 되며

친구들의 감정까지 살펴야 하는 곳이다. 참아야 하는 것도 많은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안 된다.

이타적이거나 배려가 많은 아이일수록 더 많이 참아내고 넘어서서 학교를 즐길 줄 안다.

거기서 잘 이겨내고 집에 와서 마음과 몸이 쉬는 아이들은 에너지를 학교에 다 쓰고 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들은 가정에서 많이 안아주면 좋겠다.

정말 잘하고 있다고.

학교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는 나로서는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었는데도 엄마랑 있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이 클수록 가족 여행을 안 따라가려고 한다는데 아이들은 여행 가자고 또 조른다.

나는 정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20대에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살아보니 게으른 나는 엄마보다 독신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책임질 아이들이 생기고 혼자 세상을 내딛을 수 있게 이끌고 손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부담이고 숙제였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도 엄마랑 시간을 보내자고 조른다.

정말 귀찮고 하기 싫은 숙제다. 하지만 이러한 엄마의 노력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뿌리로 남아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힘든 일을 겪고 꺾이고 가지가 부러져도 다시 꽃 피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을 믿는다.

오늘도 조금만 더, 애를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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