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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의 초상화

의상과 보석으로 읽어낸 고독의 미장센

by Dear Ciel
미장센 (mise-en-scène), 시선을 사로잡는 마법


한 순간의 화면이 사람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힘.

내 시선을 붙잡은 단 하나의 사진도 그랬다. 푸른 깃털의 머리장식, 같은 색의 드레스, 푸른 스카라베 목걸이를 걸친 여인. 그 이미지는 곧바로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나를 끌고 갔다.


200년 전 십 대 소녀는 최초의 SF 소설을 집필했고, 현대의 한 소년은 11살의 나이에 그녀의 소설을 읽고 “이 영화를 만들 거예요.”라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시간과 꿈을 거쳐 완성된 작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의상은 이야기의 서사를 입고, 인물의 내면을 비추며, 관객은 그것을 보는 동시에 읽어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영화는 의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무대 디자인, 조명, 카메라, 음악이 서로 밀고 당기며 정지된 순간조차 움직이게 만든다.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배우의 연기 속에서 우리는 그 소리와 향기에 스며들게 된다.


이번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 초연 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고전 공포물의 문법을 가져왔지만, 델 토로 특유의 ‘꿈처럼 만들어낸 미장센’으로 재해석한다. 대규모 세트와 정교한 소품, 과장된 듯하지만 설득력 있는 시각 언어가 영화의 균형을 잡아준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세계를 걷게 한다.


감독은 첫 장편 영화 크로노스(1993)를 만들 때부터 이미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지미 킴멜 쇼에서 그는 “11살에 소설을 읽고,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십 대에 무수한 꿈을 꾸고 잊어버리지만, 그는 그 마음을 놓지 않았다. 평생에 걸친 구상 끝에 결국 자신의 프랑켄슈타인을 세상에 내놓았다.


프랑켄슈타인은 원작 소설뿐 아니라 초창기 영화, 뮤지컬, 수많은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재해석되었기에, 읽지 않았다고 해도 “나 이거 읽은 것 같은데…”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다.


내게 프랑켄슈타인의 첫 기억은 오래전 TV에서 보았던 흑백 이미지와 여자 주인공의 목을 감싼 초커였다. 스티치를 가리기 위해 항상 목걸이를 하고 있던 모습이 어린 나에게 섬뜩했고, 그 충격만큼 초커만 보이면 그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억은 델 토로 감독의 푸른 깃털과 티파니의 스카라베 목걸이로 바뀌게 되었다.


감독은 이번 의상을 ‘오페라처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크림슨 피크’에서 함께 작업했던 코스튬 디자이너 케이트 홀리는 델 토로와 감각을 공유하며, 의상과 소품이 캐릭터의 서사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만든 의상은 과하지도 않으면서, 조명 아래에서 배우의 움직임과 세트의 질감에 맞물려 아름답게 살아난다.


중심인물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라벤자(미아 고스)는 곤충학과 식물학에 예리한 감각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의 지성은 옷장에서도 표현된다. 드레스 패턴과 실루엣, 텍스타일 속에 딱정벌레와 작은 날개의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 조명과 카메라가 그녀를 비출 때면, 마치 잡지 표지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Image01.png Netflix


티파니와의 협업, 빛과 보석의 듀엣


이 영화에서 빛은 인물보다 먼저 장면의 중심에 들어선다. 빛은 그 자체로 연기를 하고, 보석이 응답을 한다. 보석이 먼저 눈길이 가는 사람인 나에게는, 특히 엘리자베스의 스카라베 목걸이와 그 착장이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티파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토퍼 영은 19세기 티파니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메리 셸리의 시대적 공기와 영화의 재해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자 했다. 케이트 홀리는 티파니 아카이브 속 보석들과 자신이 만든 의상을 매치해 엘리자베스의 배경과 역사, 예술적 유산을 옷 위에 흩뿌렸다. 그 작은 요소들은 마치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알고 찾아가듯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가장 인상적인 두 가지 주얼리는 푸른 유리 스카라베 목걸이와, 한 세기 넘게 착용되지 않았던 다이아몬드 폴딩 판햄 웨이드 목걸이이다.


푸른 스카라베 목걸이는 아르누보의 미감을 담은 파블릴 유리(Favrile Glass,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가 특허를 내고 제작했던 독창적인 유리)로 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스카라베는 태양신 ‘라’와 연결된 ‘부활’의 상징이었다. 부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했던 문화적 상징물이었다.


Image02.png the Scarab necklace, @tiffanyandco


폴딩 판햄 웨이드 목걸이는 40캐럿 이상의 유러피언 컷 다이아몬드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보다 둥글고 적은 면을 가진 이 컷은 산업화된 날카로운 섬광과 같은 빛이라기보다 부드럽고 따스한 빛을 머금는다. '빛을 얇게 머금은 보석'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영화에는 이 밖에도 맞춤 제작된 붉은 묵주 목걸이, 소품처럼 배치된 주얼리 오브제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발견할 때마다 작은 기쁨을 담게 될 것이다.


Image07.png the Wade necklace, @tiffanyandco


델 토로가 연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영화 속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크리처는 파스텔 톤으로 덧입혀진 나비의 얼굴을 하고, 아이의 움직임을 가진 존재였다. 자신을 만든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세상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존재. 그는 나비에서 나방이 되어 복수를 선택한다.


어쩌면 그의 비극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곁을 지켜줄 단 한 사람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그에게 남겨진 ‘빈자리’.


메리 셸리가 원고를 쓰던 시대의 공기가 스며들고, 영화 속 1850년대의 바랜 빛이 큐 사인을 보내면, 그 틈으로 델 토로의 세계가 열린다. 그는 이번 작품을 ‘신과 피조물’의 관계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더 근원적인 틈에 집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크리처는 아버지인 빅터가 처음 가르쳐준 단어- Sun, 태양을 홀로 바라보며 받아들인다. 그 태양은 그에게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이야기는 복수가 아닌 이해의 빛으로 천천히 닫힌다.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든 그의 모습만이 아주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Image 01 : The Weeders, Jules Breton,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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