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닉스, 빛을 품은 침묵
P는 꼭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마음 한켠을 열어두고 기다려지는 그런 친구다. 취향이 비슷하고, 곁에 있어도 전달되는 흔들림이 크지 않아 오래 함께 있어도 편안하다. P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손 글씨를 빼곡히 채운 카드와 포장을 마친 선물을 가방에 넣었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도 기뻤다.
그녀가 만나자고 한 곳은 조금 특별했다.
요즘은 몇 가지 유형별로 비슷비슷한 카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이곳은 달랐다. 낮은 조명이 드리워져 있는 공간에는 시간과 오래된 LP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벽면에는 새어 나오는 음악의 미세한 떨림이 배어 있었다.
자리를 둘러보다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0.3초면 충분했다. P였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팔을 들고 손바닥을 펼쳤다가 잠갔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의 공백이 음악처럼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조명은 한쪽으로 기울고, 우리 앞에 놓인 잔과 이야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그 끝자락이 내 손등에 닿아 흔들리고 있었다.
Singin’ the Blues가 흘러나왔다.
주인장의 분명한 취향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리고, 왼쪽 발이 바닥을 톡톡 친다. P가 왜 이곳에서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단순함 속에 세련된 선율과 맑은 화성을 가진 음악을 선호한다. 스카를라티의 피아노 소나타나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처럼. 그들은 설레면서도 무겁지 않은 우아함으로, 내 마음을 건반 위로 뛰어다니게 만들거나 감미로운 대화로 이끌어 준다.
그래서인지 재즈도 얼리 재즈를 좋아한다. 물론, 그리고, 니나 시몬.
밤이 되면 불을 끄고 향초를 켠 후, 방 안의 공기를 그녀의 목소리 온도로 맞추어 놓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밤이 남긴 마지막 잔향 같다.
1920년대 재즈에는 흑백의 리듬이 있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응원하는 선율이다. 나는 그런 음악의 시대가 만든 의상과 장신구를 좋아한다.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파티장.
낮게 드리운 조명 아래, 드롭 웨이스트 실루엣의 드레스 자락은 흔들리고, 비즈가 달린 머리 장식 아래 보브 컷을 한 여성들이 재즈 선율 사이로 그림자처럼 서 있다. 목선 아래 길게 늘어진 목걸이와 플래티넘의 차가운 은빛, 바게트 커팅 다이아몬드의 선이 흐르고, 오닉스의 검정이 그들의 미소와 대화를 담아낸다. 한 여인이 내가 디자인한 귀걸이를 하고 나를 향해 찡긋 미소 짓는다.
학생 시절, 처음 다이아몬드가 들어간 귀걸이를 디자인할 때, 나는 오닉스를 자주 사용했다.
내게 검정은 멋진 색이었다. 어설픈 드로잉 라인과 박자가 어긋나는 붓 터치마저 오닉스의 색이 단정히 마무리해 주리라 믿었다. 그 시절의 드로잉 중 하나는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닉스는 단순한 ‘검은색’ 이상의 것이 되었다.
그 보석은 절제와 기억, 그리고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의 정서가 담겨 있다. 모든 소리를 품어내는 깊은 공간처럼, 그 어둠 속에는 여백과 수용이 있었다. 오닉스의 검정은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보여주는 정제된 디자인의 언어이자, 침묵 속의 힘을 지니고 있다.
오닉스는 오래된 건물 안으로 스며든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고요함이다.
수도원의 회랑, 닫히지 않은 문 안으로 보이는 어두운 공간이 바로 오닉스다.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머물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이 다시 바뀌었다.
Ain’t Misbehavin’.
리듬이 살짝 흔들린다.
잔 위로 조명이 일렁이고, 오닉스 귀걸이 위에서 빛과 그림자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