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maline- 무지개의 모든 색
그림을 하나 그려보세요.
맑은 어느 날입니다. 당신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위에 작은 새들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삶의 단면을 혈액형이나 심리 테스트처럼 몇 개의 그룹으로 묶어 설명하는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꽤 어릴 때 들었던 것인데, 다 잊었지만, 이것만큼은 가끔 생각난다. “나무 위에 몇 마리의 새가 있나요?” 그 숫자는,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의 수’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꽤 속이 상했다. 내가 그린 그림에서는 다섯, 여섯 마리 정도의 새가 있었는데, 왜 이토록 적은 숫자인가 했다. 새 떼를 잔뜩 모아 그려보려고 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 나무에는 5-6마리의 새들이 고집스럽게 앉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진정으로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나의 침묵을 설명하지 않아도 듣게 되는 사람, 내가 기울어지면 반듯하게 다시 설 수 있도록 중심축도 옮겨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다섯, 여섯 명 정도라면 딱 좋은 숫자라는 것을.
사실, 서로의 나무를 찾아가 수다를 떨고, 노래를 불러주는 새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할 수 없이 다녀오거나, 의례적으로 한두 마디 소절을 머뭇거리다 후다닥 내 나무로 돌아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시간과 마음의 결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그들만의 패턴이 담긴 오래된 서사(narrative)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무지개의 길
얼마 전, 나의 새 하나가 하늘로 향했다.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가까운 친구이자 선생님과 같은 그런 존재였다. 나의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있어도 괜찮은 그런 사람. 실수도 어둠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틀 전에 통화하고, 아침에 잠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고 일을 하던 중이었다. 오후가 되어 전화가 왔다. 반갑게 언니의 이름을 불렀는데,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숨을 낮추고 있었다. 혹시나 했던 그 이야기를 들었다. 말문이 막히고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지금도 흐르는 시간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 핸드폰도 연결이 되지 않는 곳에서 잠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와 내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다.
언니가 좋아하던 팔찌가 있다. 내가 만들어 드렸고, 그 끝에는 작은 투어멀린 장식(Tourmaline charm)이 매달려 있었다. 매달려 있던 부분이 약해져서 고쳐 달라고 다시 내게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그 팔찌는 이제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게 되었다.
Tourmaline
모든 색을 품을 수 있는 돌이다. 그 이름부터 ‘여러 가지 색을 가진 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초록과 분홍색이 겹으로 되어 있는 ‘Watermelone Tourmaline’부터 세 가지 이상의 색이 함께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 돌이 지구 속에서 솟아오르며 무지개의 길을 지나 세상의 모든 색을 담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스토리를 입힌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사람의 삶이 녹아 있다. 어둠과 밝음, 기쁨과 상처, 사랑과 이별의 색들이 켜켜이 쌓이고 겹치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의 색을 띠게 되는 것 같다.
언니는 이제 무지개의 끝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나의 나무 위에 앉아 익숙한 노래를 선물로 줄지도 모르겠다. 무지개 어딘가에 있는 창문을 열어 나를 보고 싶을 때면, 언니의 투어멀린 팔찌가 열쇠가 되어 내 마음도 열어줄 것만 같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새가 되어 조용히 다가가 앉게 되는 그날이 오면, 오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싶다. 가장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줄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 내게는 기쁨이었어요. 감사해요.”
Image 001: The American Windows by Marc Chag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