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세탁해 주는 글쓰기

ft. 브런치에서 30일

by Dear Ciel
몇 번의 선택 버튼 누르기와 세제를 넣고 사라졌다가, 알람 소리와 함께 건조로 이동하고 마무리, 필요에 따라 다림질, 약간의 정리가 필요.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세탁이었다.


시설 격리 첫날, 나를 반겨주는 듯한 플라스틱 큰 봉투에 있는 물병, 과자, 일회용 젓가락, 컵라면들과 함께 섞여 있었던 빨랫비누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방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니, 14박 15일에 필요한 모든 일거리는 ‘방안’에서만 처리해야 하고, 빨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빨랫비누를 내가 사 보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img.png 14박 15일을 함께 했던 나의 비누친구


마스크 착용과 함께한 긴 비행, 도착 후 공항에서 작성해야 되는 많은 서류들과 검사 그리고 인터뷰 등으로 지쳐있긴 했지만, 코로나가 신경이 쓰여 입고 왔던 옷들을 모두 빨래해 버리기로 했다.


두껍거나 가벼운 것과 상관없이 물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종료의 직물들은 세탁기와 건조기의 도움을 받고 살아오다, 겉옷들을 모두 손빨래를 하고 있자니 피곤하고 힘들고 짜증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몇 번의 헹굼으로 모. 두. 다. 마무리를 하고 걸어 놓으니 편하게 쉴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시설 격리를 하면,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체온과 함께 혹시 어디 아픈 곳이 생기는지, 건강상태는 어떤지를 다운로드한 앱을 통해서 제출한다. 모든 식사는 아침 8시, 점심 12시, 그리고 저녁 6시에 문 밖에 배달이 된다. 절. 대.로. 나가서도, 담당자와 마주쳐서도 안된다. 질문과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에는 전화를 하거나, 방문에 메모를 붙이거나 바닥에 둔다. 물론, 예외도 있다. 3번의 코로나 검사는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오셔서 테스트를 해 주셨고, 요청한 물건들이 도착했을 때는 방호복 착용을 한 담당자가 문 앞에서 ‘얼굴을 보고’ 전해 준다. 그 외에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다.


Screen Shot 2020-11-07 at 4.59.45 PM.png 빨래 널기의 나쁜 예 : 시설 격리 중 세탁량이 많을 경우를 대비, 옷걸이를 한두 개는 가지고 와야 한다.


일을 할 때는, 이메일에, 전화에, 메시지가 몰려오는 것을 피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동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원하던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딱히 할 것은 없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티브이 홈쇼핑을 채널별로 돌려보아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다 빨랫비누가 눈에 들어왔고, 다시 빨래를 시작했다. 적당한 온도의 물에 섬유들이 릴랙스 하도록 한 후 비누칠을 한다. 있는 힘껏 이리저리 문지르고 비틀다가, 깨끗한 물이 나올 때까지 마무리 헹굼을 한 후, 탁! 털어서 걸어 놓는 과정은 예상하지 못한 희열과 함께 뭔가 해 내었다는 안도감까지 있었다. 1주일이 지난 즈음에 빨랫비누를 반 이상 사용할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그렇게 ‘매일’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01.png 그림 1


마음이 기울어지면, 나는 손빨래를 한다.


시설 격리가 끝나고도, 마음이 찌뿌둥하고 무거워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하고 싶을 때는 손빨래를 한다. 고작 2개월 정도이니 습관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취미라고 하기엔 당당히 말하기도 좀 그렇다. 무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는 이름 없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마음과 정신이 온전히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럼 명상이라고 불러야 할까…)



글쓰기


내가 유일하게 (지금은) 한국에서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J언니는,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횟수로도 꽤 오래되었고, 올린 글의 양도 엄청나다. 하루를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어디서 시간을 내어서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는지, 왜 써서 올리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읽는 내내 기쁨을 전달받는다. 나도 블로그를 해 볼까? 그리고 한 달 전, 브런치를 시작했다.


어떠한 주제로 글을 써 나가겠다는 대략의 계획을 적어서 브런치 팀에 보내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글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매일 어떠한 형태로서의 글을 쓰면서 살았지만, 지금까지 ‘글쓰기’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글쓰기 천재들은 ‘시작’과 동시에 짧은 시간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을까? 백 퍼센트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 어느 누구도 쉽게 글을 써 내려가 뚝딱 하고 책 한 권을 지어 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분들의 노력과 인내와 고뇌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책 한 권이 지어지게 될 것이다.


겨우 한 달, 워드 커서의 깜박임만 바라보고 있어 보니, 그리는 대로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쓰는 대로 책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메타인지를 키워 준다고 하는데, 30일 정도 키워진 나의 메타인지는 글쓰기가 ‘할 수 없는 것’, ‘비현실적’이라는 사인을 보내어 준다. ‘작가’라는 호칭을 서로 불러주고, 누군가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이 곳의 풍경이 신기했지만, 나를 작가라는 생각을 해 본적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06.png 그림 2



손빨래


지금의 나의 글쓰기는, 내가 하는 손빨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세탁기를 사용해도 되는데 굳이 손빨래를 하고 싶은 것이, 힘든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때가 묻어 우중충해진 마음과 생각을, 주제와 자료들이 들어간 표백 비누로, 잘 풀어지지 않는 글을 비틀고 문지르며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면서 집중을 하다 보면, 어찌 되었든 마무리를 하고 발행 키 버튼을 탁! 치고 널어 버린다.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글을 짓는 브런치 마을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이 마을은 출간 작가들도 많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고, 바쁜 하루를 쪼개어 글을 써서 올리며,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도 이방인과 같다.


내가 머무는 이곳은 있어야 할 가구도, 생활 용품도, 정원도 제대로 가꾸어져 있지 못하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한분 두 분 눈인사를 건네어 주신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웃음을 던져 주시고, 산책길 가시다 길에서 주웠다고 예쁜 낙엽도 내 손에 쥐어 두고 가신다. 계획도 없이, 보이는 대로 꽃과 나무를 심으면서 마무리도 못한 내 정원을 보고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쉬고 하라고 커피를 들고 와 함께 시간도 보낸다. 또! 다른 이웃 분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시기도 한다.


첫 글을 올리고, 첫날 받은 두 개의 '라이킷'들, 처음으로 ‘댓글’로 인사를 건네받았을 때, 그리고 신기하게도 '구독자'가 되어 주시는 분들 (*이 공간을 빌어서 감사해요 :) 맞으면서, 마음속에 행복한 향들이 스며든다.


그래,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구독을 해 주거나, 댓글을 끝도 없이 달아주면서 응원받는 글쓰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손빨래 시간이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일상의 작은 ‘!’을 전해준다.


지금도 커서의 깜박임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 언제나 조금이라도 쉬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내가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서 계속해 나가고 싶다.


햇살이 가득하다.

나의 젖어 있는 글들을 널어서 잘 말릴 수 있도록, 뒤뜰로 나간다.


DreamaTolleArt.jpg 그림 3




그림 1,2,3 : Drema Tolle Perry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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