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슈즈의 기억
“섭리대로 편안하게, 잘 먹고 건강해지기.”
작은 새 한 마리가 하늘에 떠 있는 그림과 함께 안부 메시지를 받았다.
감사하다. 와이파이를 타고 들어온 짧은 글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날아오르는 새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Billy Elliot의 마지막 장면이 떠 올랐다.
몇 년 전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짧은 방학을 이용해서 어딘가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었을 때, S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셨다. 일 년의 반 이상을 외국 출장을 다니시던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당신의 맨해튼 아파트에서 지내다 가라고 하셨고, 도착한 선생님의 아파트에는, 처음 뵙는 여자분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때만 해도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대화에는 끼어들지도 못하고, 겨우 웃음만 짓거나 묻는 질문에 대답만 하는 정도였는데, 웃음이 많고 외향적이었던 그분은 내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챙겨 주셨다.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토요일 오전, 갑자기 탭댄스를 함께 배우러 가자고 하셨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재미있다고 하시면서, 신발도 두 켤레가 있고 발 사이즈도 비슷하니 경험 삼아 함께 가 보자고 이끄셨다. 활짝 웃는 그분의 얼굴에 ‘아니오’라고 할 수 없었던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댄스 학원이라는 곳을 가 보게 되었다.
넓은 나무로 된 플로어에는, 대충 보아도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은 내 손을 잡고 사람들의 소리를 뚫고, 선생님 두 분께 소개를 해 주었다. 미소가 아름다운 부부였다. 처음 신어본 탭슈즈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자 선생님이 나에게 기본 스탭을 알려 주었는데, 첫 번째는 걸어만 다닐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작 있었지만, 두 번째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스탭이 꼬인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나름 연습을 해 보았지만, 내 꼴은 그저 천천히 허우적거리고 있는 바람인형의 모습이었다. 발과 다리보다 귀가 더 발달 해 있는 나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움직임보다 남들과는 다른 둔탁한 탭슈즈의 음색이 더 거슬렸다. 신발이 오래되었나? 엉거주춤한 내 자세는 거울을 뿌리치면 그뿐이었지만 둔탁한 소리는 피할 수가 없어, 결국은 주저앉아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바닥을 쳐 보기 시작했다.
열심히 신발을 바닥에 두드리면서 소리를 듣고 있는데, 찌릿한 무엇이 나를 관통하면서 지나간다. 조심스레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특별 관리에 들어간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왼쪽 발에 중심을 놓고 오른쪽 발을 옆으로 뻗어 바닥을 10번을 두드리고, 다시 반대쪽 다리로 10번씩, 그렇게 계속해서 허리손을 한 허수아비 모양으로 바닥의 먼지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박수소리와 함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뛰어다니던 어지러운 소리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플로어 한쪽 끝 부분에 사람들은 줄을 맞추어 서기 시작했다.
飛上
영화에서 보았던 드라마틱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피아노 반주와 함께, 첫 번째 열에 있는 사람들부터 한 줄씩 반대편 끝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첫날이라 제일 뒤쪽에 서 있었는데, 첫 번째 줄에 서 있는 이들이 가장 잘하는 그룹인 것 같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화려한 발 동작과 함께 탭슈즈의 리드미컬한 바닥손뼉과 어우러지면서 반대편으로 부드럽지만 힘차게 움직이면서 마지막에는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날아올랐다.
화면은 느리게 움직이고 카메라는 얼굴 한가득 담겨 있는 미소와 그 무게에 반비례하듯 가볍게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몸짓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무거운 신발을 신고 복잡한 스탭을 마무리하면서 바닥을 차고 오르는 그들에게서 나는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행복한 결을 보았다.
창가를 통해서 내려오는 햇살, 피아노 건반의 움직임, 그리고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흘러내리는 앞머리와 얼굴을 고루 비춰주는 빛 사이로 반짝이는 그들의 눈, 무엇을 담고 있을지 모르는 각자의 꿈과 이야기가 춤추고 있는 그곳에서,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턱을 떨어 뜨리고 바라보고 있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으로 4번의 아름다운 인간 비행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은 나의 순서라는 현실을 마주했다. 그들이 모두 서서 기다리는 플로어 저 멀리까지, 오늘 배운 스텝으로 걸어가야 된다는 사실에, 얼굴에 있던 피가 발아래로 떨어지고, 내 심장은 설렘이 아닌 공포로 튀어나올 것 만 같았다.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저기 먼 곳까지, 나는 저벅거리며, 뒤뚱 거리며, 어떻게 해서든 스텝을 밟아 보려고 했지만, 결국 눈을 감고 뛰어서 뒤로 돌아가 숨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얼마나 창피했던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에게 그날의 충격은 뇌의 어딘가에 정확히 자리 잡아, 지금도 탭댄스를 보게 될 때마다 내 심장은 어쩔 줄을 몰라한다.
非常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것은 아름답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두려움과 역경을 뛰어넘어 날아오르는 모든 것에 응원한다.
찰나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뒤로하고 다시 땅을 밟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뛰어오르는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날아오르는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다시는 뛰어오를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섭리대로 편안하게.
나를 아껴주고 걱정해 주는 감사한 지인의 메시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받아들이고 적응하기에는 멀고 아득하다.
마음에 비상이라는 메시지가 켜지고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편안해질 수 있을까.
어떤 연습을 하면 섭리에 맡기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비상 (非常) 시, 비상(飛上)하기 연습
오래된 기억 속의 댄스 스튜디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들의 행복한 얼굴을 떠 올리며, 탭슈즈를 꺼내어 신어 본다. 신발끈을 처음부터 다시 묶고, 허리에 두 손을 올린 후, 한 발에 10번씩 다리를 쭉 뻗어서 바닥을 쳐 본다.
부끄러워 쳐다보지 못했던 스튜디오 벽 큰 거울을, 턱을 들어 마주하고 움직여보자. 첫날이었으니까, 잘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몸에 힘을 빼고 발을 움직여보자. 왼쪽 발끝부터 발바닥 그리고 오른쪽 발바닥에서 발끝으로 웨이브를 하듯이 움직여보자. 거울을 계속 바라보면서 내 몸의 다른 감각들도 새로운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자. 선생님의 박수소리가 들린다. 나는 다른 댄서들과 함께 나무 마루 끝으로 움직인다.
그들의 아름다운 무대가 끝나고 이제 내 차례가 온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면서, 그 박자와 멜로디에 내 호흡을 맞추며 기다리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만큼의 단어와 문장으로, 나의 탭슈즈의 이야기 소리들이 박자만큼은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두 분의 선생님이 저기 앞에서, 기억하는 부드러운 웃음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먼저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댄서들은 나에게는 큰 관심이 없이 다음 동작들을 연습하고 있다.
그림 1 : MICHAEL ISKOWITZ, Tap Dancing LINK
그림 2 : GARETH HALLIDAY, Hope Over the Hills LINK
그림 3 : GARETH HALLIDAY, Living On The Edge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