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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Dec 30. 2020

내 마음을 대신하여 톡톡톡

새해를 부탁해

비행기에서 내려 2주간 창문 넘어 하늘만 바라보다가, 바람 불고 비 오고 추워져 12월이 왔었다. 한국에서 겨울묶음을 빠짐없이 보내는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문득 달력을 보니 30일. 깜짝 놀랐다. 성탄이 지나고 친구의 ‘올해 마지막 일요일’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했었는데 왜 갑자기 숫자를 보고 놀랐는지 모르겠다. 설마 온 세상을 마구 흔들어 놓은 이쁠 것 하나 없는 올해가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시작해야 되는 새해를 맞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상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닦기를 한다.  


펜타블렛을 중간 사이즈로 교체하면서 받았던, 검은색 노트북 키보드의 보호커버를 청소했다. 오늘 보니 ‘Delete’, ‘D’, 그리고 ‘Space bar’ 3가지의 특정한 키(Key)들만 검은색이 옅어질 정도로 많이 사용한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Delete/Backspace 는 정말 자주 사용한다. 키보드를 신경 쓰면서 보고 있으니, 여기까지 몇 문장을 써 내려오면서도 계속해서 Delete 키 누르기를 쉼 없이 하고 있었다. D는 Ctrl과 함께 사용하면서 꼭꼭 눌렀나보다. 저장되어 있는 간격만큼 꼭 같이, 일정하게 이동을 시켜야 했던 것이 많았나 보다. 원상태로 돌려주는(Undo) Ctrl + Z 기능을 더 많이 사용했을 것 같은데 의외다. 스페이스는 띄어쓰기뿐만 아니라 이미지 이동을 하면서도 함께 누르면서 사용했을 것이니 자주 사용을 한 것이 맞다. 


키보드 보호스킨을 빛을 향해 올려서 자세히 보니 내 일상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다. 나의 손과 발 대신 일거리를 마무리한 후 전달해 주고, 쇼핑을 도와주고, 보고-읽고-듣고싶은 모든 것들을 찾아준다. 나의 감정과 목소리를 담아 길 건너, 바다 건너, 필요한 곳 어디든 피곤한 내색없이 퀵 다녀온다.


내 마음을 대신하여 톡톡톡
마음이 기쁘고 설레어서 콩콩콩
화가 나서 앞을-퍽퍽, 뒤로-퍽 퍽 퍽
마무리 지어야 되는 일들을 콕콕 집어서, 토록 톡톡


그러고 보니 사는 것도 키보드 위에서의 삶과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계획하고 움직였지만 내 마음 같지 않아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며 산다. 터벅터벅 타박타박, 겨우 한걸음은 앞으로 내딛었나 싶으면 두 걸음을 Delete 하니, 가야 할 길은 먼데 나아가지 못한 마음만 동동하다. 주저앉아 기울어진 눈썹을하고 옆을 보니, 또 다른 내가 스페이스를 두고 줄줄이 앉아 나만 쳐다보고 있다.  


햇살 좋은 날 친구와 좋은 수다들을 모아  Ctrl + D 를 해 본다. 같은 웃음으로 쌓아 올린 우리의 성안에서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해 계절을 보낸다. 조금 더 담고 싶고 하나만 더 가지고 싶어 마음이 위태로울 때는 스페이스를 눌러, 나의 욕심과 빛나는 척 나의 것이 아닌 것에서 간격을 띄워본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는 키보드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청소는 해 주었지만 다정하게 말 한마디 없이 곁에 두고 살아왔다. 24시간 조금 더 남은 2021에는 나를 만들어주고 있는 가까이에 있는 모든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챙겨야겠다. 그리고 나를 부탁해본다. 그들을 한번 더 바라보는 마음이 결국은 나와 내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다독거리는 일임을 올해의 끝자락이 내게 알려준다. 


새해에도 Delete 하고 Backspace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평범한 하루를 지우고 그려내는 것을 반복하면서 일 년을 지어낼 나를 그리고 당신을 응원한다.       






제 글을 구독해 주시고, 읽어 주시고, 댓글로 응원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새해에는 지우고 다듬어 계획한 한걸음 걸어내시길 소망합니다.

새해  많이 받으셔요!  



IMAGE : A CARVED AND PAINTED WOOD HEART IN HAND LODGE SYMBOL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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