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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Feb 02. 2021

나의 이름은

산골, 피정, 침묵. 외로움을 건너면

호롱불과 우물에 기대어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았다. 불을 지펴 태운 땅에 농사를 짓는 화전민. 90이 되신 할아버지는 마지막 화전민으로 강원도 깊은 산골에 살고 계셨다. 열댓 가구가 함께 살던 시절, 계절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남아있던 여섯 가구도 모두 산을 내려갔다. 할아버지 홀로 남은 그곳은, 전기도 핸드폰도 깊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지 못한다. 


밭 가운데는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계신다. 오면 가면 묘소 위의 풀을 뽑고, 말도 건네어 보신다. 곶감을 손수 말려서 제사상을 준비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내 부모님을 향한 나의 두 손이 거드름스러워 얼른 등 뒤로 감추게 된다. 


하루에도 두 번씩은 길 없는 길을 20분씩을 걸어 물을 받아 오신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햇살 끝 자락을 잡고, 할아버지는 밥과 채소와 된장을 비벼 저녁을 삼키신다. 한 잔의 소주는 저녁 친구가 되기도 하고 믹스커피가 되어, 씁쓸하고 고개넘기 힘든 삶에 짧은 달달함으로 내일을 연다.


할아버지는 아랫마을에서 함께 살던 예전 이웃들을 만나거나, 등산길 하루를 지내고 가는 ‘사람’을 가까이 한 날에는 며칠이고 외로움에 숨을 가빠 하셨다. 혼자서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나 보다.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이 참 편하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아이로 태어나, 그렇게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돈을 벌어 먹이고 입히며 살아가야 하는 삶에는, 자연이 만든 모든 것들의 형태가 다르듯, 서로 다른 모양을 한 우리는 묶이고 헤어지며 함께 지내야만 한다.


나와 맞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늘 함께라면 삶이 좀 나아질까. 현실은, 많은 순간 맞지 않는 꼴을 한 그들과 마주한다. 그들과의 부드러운 마찰을 위한 노력은 가스를 만들어 내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는다. 더 이상 남은 자리가 없게 되면, 나는 마치 복어 같은 꼴을 하고 뒤뚱거리게 된다. 작은 뾰족함으로도 터져버릴 만큼 큰 풍선이 되기 전에, 독한 바람을 빼어내는 나만의 장소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100마일을 달려가면, 피정(Retreat)을 하는 곳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곳에는, 수도원에서 준비한 프로그램 외에도 가끔씩 개인 피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저녁부터 점심식사 때 까지는 침묵을 하고, 수사님들의 하루 일정에 맞추어 원하는 사람들은 작은 본당에서 가지는 기도와 미사에 참여할 수 있다. 모든 시간은 담당 수사님의 종소리로 모이고 흩어진다. 산 깊은 곳에 지어진 이 곳은 핸드폰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벽난로와 피아노가 놓여있는 공유공간에는 와이파이로 연결이 되긴 하지만, 이곳에서도 누구네 저녁식사에 오른 포토제닉 한 음식들과 보정 필터를 통과한 웃음들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싶지는 않다. 잠시나마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하늘과 땅 어느 즈음에서, 움직이는 여러 생명 중 하나로 지내다 올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장기투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누구는 몸을 다쳐서, 또 어떤 이들은 마음을 다치고 찾아든다. 긴장을 풀어내고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가던 이 곳에서 나도 언젠가는 오랜 방학을 지내고 싶다.



깊은 산속의 피정의 집에서 가지게 되었던 평화로움에, 산골에서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편리한 연결 버튼들에서 떨어져, 침묵하고 자연에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태백산 기슭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삶을 둘러보니,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약간의 자신감과 연습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나의 막연한 자신감 조차도 어쩌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방문한 등산객과 헤어진 후, 할아버지는 며칠을 술로 보내셨다. 텅 빈 두 눈을 하고, 굽은 등을 들어 올려 방에서 나오신다. 작은 마당에서 집의 가장자리 한 곳을 계속 쳐다보신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셨고 한글을 군대에서 배우셨다는 할아버지는, 스크랩 종이에 열심히 연습을 하신 뒤 직사각형의 나무를 다듬어 당신 이름 석자를 쓰셨다


평생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았고 가족들을 지켜낸 할아버지는, 90년 가까이를 지나 자신의 문패를 만들어 붙이셨다. 땅을 일구었고, 가족들의 삶을 일구어 하늘과 가까이 살아온 할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어깨를 편다. 


긴 시간 쉼없이 살아온 할아버지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세월을 맞이하기 위한 대나무 작업을 시작하신다. 그래야 몇 년을 따뜻하게 버틸 수 있다고. 할아버지의 망치소리가 조금씩 멀어진다.



붓을 들고 할아버지가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신다.

나의 이름은,

.   . . 


지금의 나는 내 이름이 세겨진 문패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

그 대답은, 나의 망치를 가지고, 나의 대나무 작업을 하고 난 후에나 가능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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