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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Jan 29. 2021

커피로 읽어가는 하루

컵과 접시가 기억하는 오늘

오늘은 커피가 짙은 듯하다. 컵 바닥에는 마시고 남은 커피 얼룩이 진하게 남겨져 있다. 숫자에 민감한 사람들은 운전을 하다가도 앞 차의 라이선스 번호를 수식으로 풀어나간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모양이다. 마치 떨어져 있는 별들을 연결해서 별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나는 어지러이 던져진 점과 선을 연결해서 드로잉을 마친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클릭’ 하고 소리를 내면, 풀지 못하는 퍼즐 맞추기를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그들은 반짝이는 첫 숨을 쉰다.


오늘따라 커피 찌꺼기들로 만들어가는 이미지가 신통치가 않다. 별자리 만드는 것은 내려놓고 컵을 씻는다. 흐르는 물이 내 손을 두드릴 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나를 톡톡 치고 있다.


 1


학교 공부가 끝나갈 때였다. 점심시간에 가끔씩 보게 된 친구 두 명이 있었다. 일본 그리고 태국에서 공부하러 왔던 이 친구들은, 내 취향에 맞는 일본 식당과 태국 식당들을 알려준 것 외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만나게 될 때마다 자주 듣게 되는 그들의 주말 스토리는, 미래를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을 함께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점집을 향하는 주말이 지나면, 나는 한결같이 ‘잘 다녀왔어? 어땠어?’라고 첫인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신기했다- 좋았다- 괜찮았다- 그냥 그랬다- 별로였다 등의 별 모양 몇 개로 등급을 주고 간단한 리뷰를 했다. 마무리를 할 때 즈음에는 우리의 점심시간도 끝나갔다.


그날도 그들은 주말에 가게 될 새로운 점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주 들었던 이야기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귀에서 지나가던 단어 두 개에 눈과 이마가 반응을 했다.


‘커피’. ‘티’.


난생처음으로 들어 본 이야기였다. 그들에 따르면, 커피나 티를 마시고 나서 컵을 뒤집어 놓으면 미래를 알아낸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학교가 끝나가고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호기심'이 먼저였다. 그때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웬만하면 알아보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두 친구가 함께 가겠냐고 물을 때마다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위아래로 두 번 반을 움직였다.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일본 친구가 운전을 하고 나를 픽업했다. 2-도어 자동차 뒷 좌석에 앉았다. 산 하나를 넘어 한참을 지나서야 그 장소에 도착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던 동네였는데,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장미꽃들이 많았던 정원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있으니, 4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나오셨다. 우리들에게 커피를 마실 것인지 티를 마실 것인지 알려 달라고 했고, 준비가 되자 태국 친구가  먼저 들어갔고, 나는 두 번째였던 걸로 기억한다.


먼저 그녀는 나의 이름과 생일을 물어보았던 것 같다. 나는 커피를 마셨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진하고 쓰면서 터벅한 맛의 커피는 처음이었다. 숙제처럼 커피를 마시고, 다행히 양이 많지는 않았다, 그녀가 컵을 뒤집어도 된다고 했을 때, 호기심이 가득한 눈에 힘을 넣고 '하나, 둘' 하면서 컵 받침 위로 커피 찌꺼기들이 든 컵을 뒤집었다. 그리고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의 동의를 구하고 그녀가 하는 이야기 모두를 녹음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일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녀가 했던 이야기, 나의 미래의 일들은 10년이 지난 뒤 우연히 녹음했던 파일을 발견하고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던 2가지 사건들은 그녀를 만났던 시간으로부터 4년 그리고 5년 후에 일어 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믿지 않았던 그 두 가지 일들은 현실이 되어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왜 녹음을 하려고 했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나는 그곳에 갔었던 사실도, 그녀가 확신에 차서 했던 이야기들도, 남의 이야기처럼 듣고는 잊었다. 아마도 호기심 때문에 갔던 나는 출발부터 그녀와의 상담까지의 과정을 마친 후, 더 이상의 관심거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 파일을 다시 듣고 조금은 놀라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미래가 정해져 있다거나, 운명이나 사주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은 없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후, 커피로 하는 점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컵을 잡고 뒤집는 방향부터, 커피 가루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의미하는 단어들이 차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커피잔 안에서 만들어진 그 이미지들이 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점성술사들의 그것과 어딘가 닮아 있는 것만 같았다.


2


우리는 태어나 울음을 시작으로, 습득된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먹고 마시고 자라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보통의 우리는 볼 수 없는 어떤 흐름이 있고, 그것들은 매일의 일들을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 컵과 접시와 보울들 안에 담겨 있기를 반복하고, 특별한 기프트를 받은 사람들은 그 기억을 읽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분명, 나의 상상력이 던져준 초콜릿 같은 것일 뿐이지만,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입을 통해서 뛰어나오는 말과 표현들을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친구들이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정해진 운명으로 살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생은 정말이지 망했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후회가 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오늘 하루의 방향성을 1° 라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옮겨두기를 연습해 보고자 한다. 나의 컵과 접시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움직여 보려 한다.


오늘 내게 허락된 양식들에 감사하면서 잘 씹어서 먹고, 좋아한다는 마음을 입으로 소리 내어 좋아하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정말이지 아껴주기 힘든 이들에게도 부디 내 입에서는 지혜로운 말들로 그들과의 하루도 무난하게 보내며, 잘 버티어준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커피와 함께 소리 내어 응원을 하기를 반복하려고 한다. 작은 움직임을 향한 나의 반복은, 이번 생에 대한 나를 위한 배려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잡아 두어도 약한 마음이, 지혜롭지 못한 말들이, 계획한 반복을 무시하고 잊어버리라 할 때가 또 올 것이다. 그럴 때가 오면, 커피를 마시면서 나의 오늘의 다짐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커피 컵 바닥에 나타나는 내 미래의 패는 내가 만들어 보려고 할 것이다. 





All Images by BRIAN S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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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1 : SHELL & JUG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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