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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Jul 17. 2021

9603 km

01 :  나의 친구 A

1.

9603 km 

A와 내가 떨어져 있는 거리.


그녀와 내가 친구가 되어가는 시간은 봄과 여름이 지나고 있는 어디 즈음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처음 만났을 때를 끄집어내어 본다. 

먼지를 톡톡 털고, 주름을 탁탁 털어서 대충 내려놓아 본다. 

끝이 보이는 듯하여 잔걸음으로 왔더니 아니라고 한다. 저기 멀리, 아까 보았던 아릿한 깃발이 나를 향해 흔들리고 있다. 아침나절 걸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알고 지낸 시간을 재어보는 것은 그만두어야겠다. 덥고 습한 이 날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다. 모아 온 시간의 거리는 생각보다 길다.


요즘 A와 나는 서로의 안부를 거의 매일 물어보고 있다. 

내가 잠들고 있는 시간엔 이메일로, 함께 눈을 뜨고 있을 시간에는 땡x3톡으로 챗도 하고 통화도 한다. 


20 miles

운전을 하면 도착하던 그녀와 나의 집의 거리.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 때는 지금처럼 자주 연락을 하지 못했다. 


일이 바빴고, 

일 때문에 챙겨야 했던 것들이 많았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에는 미루어 두었던 집안 일과 고장 나겠다고 소리치는 몸 어딘가의 나사들을 조이고 윤활유를 채워 주었다. ‘내일’, ‘다음 달’을 약속하며 만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오래된 시간이 주는 선물은, 고운 채로 진짜와 가짜를 걸러낼 수 있도록 해 준다.

진짜들은 씨실과 날실이 되어 그들만의 천을 만들고,  옷을 짓고, 테이블 보를 만들어 힘을 내라고 선물을 보내준다. 그 옷으로 갈아입고, 그 식탁보 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세상으로 다시 나아간다.


9603km 거리의 두 개의 하늘


A는 며칠 전부터 천둥과 번개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오늘은 좀 더 심해져서 결국은 비상용으로 만들어 놓은 백팩을 들고 여차하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백팩을 만들어 놓고, 신발을 신고 소파에서 잠을 청했던 나의 그때가 떠 오른다. 물론 나는 지진 때문이었고, 그녀는 휘어 감고 말아 올릴 큰 바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토네이도.

그녀가 에머럴드 시티까지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투리 천으로 차받침을 만들어 보내려 한다.





title image : Starry Night and the Astronauts by Alma Thomas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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