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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Aug 03. 2021

밤빛과낮빛

 1

손등에 멍이 들었다.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작가님은 멍에서 무지개 색의 아름다운 변화를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나는 노란색에서 녹색에 걸친 텁텁한 두어 가지 색을 보았을 뿐이다. 비 온 뒤의 맑고 윤이 나는 오리지널 무지개에서 티스푼 사이즈로 된 색들을 7번씩 볼 수 있는 멍이 아니라면 애정을 담아 쓰다듬어 주고 싶지는 않다. 


투박한 나의 멍.

간호사님은 아프지 않다고 하셨지만, 그런 말을 믿을 수 있는 순수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엔 나의 시간이 모자라다. (당연히) 아팠고, 주사 바늘이 남겨 준 농도와 채도가 어정쩡한 올리브 그린 색을 한 멍이 그녀의 말은 하얀 거짓말임을 증명한다.


먹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생겼고, 겨우 먹고 나서도 소화가 잘 되는 않는 것은 물론, 위장에서 ‘좀 어떻게 해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 날들이 삼일도 되기 전에, 아무런 내색 없이 교묘히 살고 있었던 나를 엄마는 내시경을 하러 다녀오라고 문 밖으로 내치셨다.


정말 대단하다. 

오전 전화 한 통화로 당일 예약을 하고, 오전에 병원에 도착해 의사 선생님과 면담, 엑스레이 촬영, 내시경 그리고 검사 결과까지 2-3시간 안에 끝이 났다. 내가 수면내시경을 하지 않았다면 더 일찍 끝이 났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내게 던진 말. 한국에 있으니 아파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이런 것이다.


검사가 시작된다.

하루에도 몇 번을 반복했을까. 오디오 파일을 3배속 리플레이하는 것과 같은 빠른. 하지만 안정적인 톤을 유지하며 설명을 이어나가는 간호사님.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부를 텐데, 대답하는 것 외에 따로 움직이거나 말을 하려고 (노력) 하지 말라고 했다. 예민할 경우 잠에 잘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끝나기 전에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결국 나는 굉장히 예민하지 않다는 것인가. 깨어나 제일 먼저 머릿속으로 지나간 생각이다. 예민하지 않으면 뒤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가는 예민해야지. 

세상을 돌아다니며 첼로를 연주하며 평생을 살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어린이가 만들어 놓았던 문장. 오래된 어른은 버리지 않았다. 아직도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또 확인하고 말았다.


회복실 담당자가 다가온다.

점심시간이니 편하게 누워 있다가 준비가 되면 내려오라고 하셨다. 알겠다고 하고 마스크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가 접어보니, 내 왼손에 꼭 쥐어져 있는 핸드폰이 보였다. 검사실 안, 소지품 보관용 노란색 상자 안에 넣어 둘 것이라고는 핸드폰 밖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그냥 호주머니에 넣어 두겠다고 말했다. 간호사님은 떨어지면 책임질 수 없으니, 통 안에 넣어 두시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올렸다 내렸던 것 같다. 그 모습이 신경에 쓰이셨나 보다. ‘소지품 박스에 있었던 환자분의 핸드폰은 무사합니다.’라고 보이지 않게 남겨진 메모를 읽을 수 있었다. 예민하신 간호사님, 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2.

친구 A에게 그녀에 대한 글을 썼다고 브런치 링크를 보내어 주었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둡게 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한국말 실력에 감탄했었던 기억을 기준으로, 나의 소박한 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그녀는 내가 쓴 글을 이해하지 못해 번역기를 돌렸다고 했고, 전. 혀. 어둡지 않았다고 했다.


영어 번역기로 변환된 나의 글은 어떻게 표현이 되었을까. ‘글을 쓴 나만 어둡게 읽었을까?’라는 궁금증은 오늘 풀렸다. 오랜만에 댓글을 남겼던 작가님께서, 지난번 글을 읽으면서 마음고생하시는 것 같았다는 대댓글을 읽으면서 칙칙한 글이 전달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살아가며 반갑지 않은 농도와 채도로 채색이 된 시간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을 마주한 날도, ‘삶의 번역기’를 지나고 나면, 좌표축에 심하게 벗어나지 않는 점과 점들이 만들어내는 완만함으로 변환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번역기라면 징징거리고 투덜거리고 싶은 날, 기꺼이 그 문을 열고 지나가리라. 상큼하고 환한 색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디폴트 필터를 통해 무난한 색감으로 어깨를 펴고 싱긋 웃어볼 수 있을 것 같다.


A가 사진을 보내어 주었다. 

먼 곳의 밤, 숨어 있는 해님을 대신해서 달빛으로 던져준 짧고 짙은 Rhapsody in Blue. 나는 그녀에게 햇살 뒤로 숨어 있는 길고 옅은 Claire de lune을 선물했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하루를 건강히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번역기란, 낮 동안의 빛과 밤의 빛이 번갈아 챙겨주는 XY 축을 받아 옮긴 점들을 꾸준히 이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점과 점을 이어가다 보면, 나만이 그려낼 수 있는 나다운 그림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콕’ 하고 표시해 두어야 하는 2021년 8월 3일의 점.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채워본다.






이미지 출처 : The Dace 1988 by Paula Rego | Tate © Paula Rego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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