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보석, 사파이어
9월 하늘에는 개인적으로 정해놓은 푸른 값이 있다. 1부터 10이라면 7-8 정도. 고대 페르시아에서 살았던 기억을 혹시나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8월과 작별을 고하면 셉템버 스카이를 물들일 사파이어의 깊은 푸른색을 기다리게 된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지구가 사파이어 위에 올려져 있어, 그 파란색 보석의 하늘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만약 내 맘대로 하늘을 담은 이야기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풀어나가고 싶다.
세상을 만든 신은 하늘창을 담아 놓은 장식장 안의 계절 구역에 아쿠아 마린, 토파즈, 사파이어, 터쿼이즈, 라피스 라쥴리 등으로 만든 반원들을 놓아두었다. 태양과 달이 만들어가는 시간과 흐름에 따라, 놀이공원에서 뽑기로 받은 둥근 공을 빙빙 돌려 오픈하듯 땅과 하늘을 잠시 열고 하늘색을 바꿔 달아 준다. 물론 계절에 따라서 돔(Dome)의 높이와 넓이도 달라져야 한다. 가을 하늘은 높아야지. 깊고 높아야 가을 하늘이다. 디테일하고 감성적인 인간을 위해서, 신은 때마다 하늘창을 바꿔주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늘하늘거리는 파란색과 하얀 구름들은 여름의 손목을 잡고 떠났다.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그는, 무겁지 않은 짙음과 적당한 밝음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사색하는 걸음을 걷는다. 그 기운을 고스란히 내려받은 우리는 끊어짐이 없는 생각과 짙어지고 싶은 마음으로 흔들리기도 한다. 가을을 타지 않기 위해서는 8월이 끝날 때 즈음에 우리 마음의 한편을 충분히 비워두어야 한다. 마시고 남은 미련들도 버리고, 먼지가 쌓인 막연한 그리움들도 털어내고, 이룰 수 없는 무거운 욕심이들도 돌려보내어야 한다.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사파이어 빛을 가진 하늘의 속도를 안전하게 받아낼 수 있는 폭신폭신한 쿠션들을 꽉꽉 채워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9월이 가지고 온 하늘을 담아본다.
눈을 감고 건강한 푸른 공기를 가득 채워보자. 지금 앉아 있는 곳에서 잠시만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소리와 생각의 잡념을 접고, 허리는 꼿꼿하게, 머리끝 부분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매달려 있다고 생각을 하고, 천천히 내 머리를 당겨 올려주는 부드럽고 친절한 힘을 느끼면서 거북목을 편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숫자를 센다.
초가을, 신선한 재료로 갓 만들어진 가을이 있는 9월만큼 건강하고 정직한 달(month)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달의 탄생석은 성실, 진실, 영원과 신뢰를 뜻하는 사파이어(Sapphire)다. 수천 년 동안 귀한 보석으로 사랑을 받았고, 중세에는 천국/하늘을 상징하는 돌이었기에 성직자들이 지니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왕족과 귀족들이 즐겨 착용했다. 영국 왕실의 약혼식에 사용된 사파이어 반지는 잡지책에 단골로 올라오는 기사이기도 하다.
사파이어의 여동생은 루비. 커런덤 (Corundum) 가족 중에서, 그녀의 정렬을 닮은 붉은~짙은 핑크를 제외하면 모두 사파이어로 불린다. 우리가 떠 올리는 블루 사파이어가 가장 유명하지만 사파이어들은 무지개 빛을 지니고 있다. 처음 스톤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짙은 핑크 사파이어랑 핑크빛이 도는 루비를 육안으로 볼 때 틀리지 않도록 눈을 부릅부릅 뜨고 봤다. 게다가 퍼플 사파이어랑 핑크 사파이어는 왜 또 헷갈렸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좀 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이 마음도 블루 한 가을 때문이다.
마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사파이어 하늘을 맞았기 때문인지, 나는 가을에 흔들리고 있다. 꼬리를 무는 생각이 끊임없이 돌고, 둥근 창문을 가슴에 달고 있는 것만 같다. 가을과 코로나가 서로 부둥켜안고는 쿵쿵거리며 뛰고 있으니 중심을 잘 잡고 서 있는 것만도 힘이 들 때가 있다. 보고 만나던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요즘은, 흐릿한 기억이라도 되찾아 달라고 뇌를 들들 볶기도 한다. 부작용 때문인지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튀어나와 눈을 어지럽힌다. 시간이 될 때는 그중 하나를 살금살금 쫓아가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발품을 판 수확을 제대로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빠져나오는 길을 다시 찾기 위해서 하지 않아도 될 노력을 해야한다. 9월의 보석을 떠 올리다 보석 공부를 시작했던 그때로 흘러 들어갔다.
처음 사파이어 원석들을 보았을 때다. 컬러 스톤들은 가지고 있는 색이 스톤 전체에 꽉 차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한데, 이리저리 돌려본 사파이어 어느 부분은 색이 옅어져 있고, 심한 경우는 아예 투명하게 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
(갑자기) 이곳에 스톤을 커팅하시는 분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원석의 상태를 잘 보고, 가장 이쁜 색을 낼 수 있도록 하면서도 스톤의 사이즈를 되도록이면 크게 (무게가 무거울수록 비싸니까) 해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가 사장님의 지시로 사이즈에 욕심을 내게 되면, 윈도윙 (Gem stone windowing or fisheye, 색이 빠져 보이게 되는) 현상을 가지게 될 스톤을 만들 수도 있다.
빛이 투과하고 반사하는 과정을 지나 우리 눈이 보게 되는 반짝임과 색은 커팅된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데, 이 반사각이 가장 이상적인 각도에 맞춰서 cut/ facet 되었을 경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색과 반짝임을 가질 수 있지만, 사이즈/ 무게에 너무 비중을 크게 두게 되면 덜 반짝이고, 덜 이쁜 색을 가지게 된다.
우리 삶과도 닮았다. 각자가 생각하는 목표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무리하게 몸집을 불리게 되면 내가 가진 색을 온전히 낼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꽉 찬 삶은 진짜가 아닌 합성품(Synthetic) 일 수도 있다. 내가 아닌 삶이다.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고, 반짝이는 색의 각도를 찾아 깎아내고 다듬어 나가는 과정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작아진 스톤이 되기도 한다. 소심 해지는 어깨는 점점 더 가파른 각도로 흘러내리고, 땅은 꺼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나를 볼 수 없어서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다. 내가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도 광물도 자연이 만들어 주었고 그 안에서 살고 있으니, 그들의 삶이나 우리의 것이 비슷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눈만 감고 현실에서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가을이 말을 걸어보려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레이다에 감지가 된다면, 눈을 감고 잠시 내 안의 보석을 들여다보자. 잘 다듬어져 있는지, 윈도우로 가슴 한 곳이 뻥 뚫려 있지는 않은지. 아! 사파이어색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와 어울릴 디자인과 세팅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자. 다이아몬드 1000개 정도는 하늘로 뿌려 보리라. 밤이 되면 사파이어를 둘러싼 별들이 되어, 가을 타는 이 마음을 달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잠시만, 1000개는 너무 작나? 만개? 백만 개?? 얼마나 뿌려야 이쁠까...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 또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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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s : Vincent van Gogh Link
1. Wheatfield under Thunderclouds
2. By the Seine
3. View of Auv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