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물건

[두 번째 진담]

by 소담


그 방에는 오래된 물건 하나가 숨어 있다. 누가 볼 새라 소리도 없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부모님 집 안방에서 잊고 있던 ‘그것’을 발견했을 때, ‘거기 있었구나’하는 반가운 마음보다는 ‘아- 어쩌지?’하는 곤란함이 더욱 컸다. 이미 퇴색해 버렸으나 한때는 생생한 의미였던 것. 낡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다.



그 물건과 나는 최소 15년 전에 만났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중에서도 캐주얼하고 가볍게 나오는 모델이 있는데 그것은 달랐다. 이미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제법 묵직한 카메라였다. 가죽으로 된 멋스러운 가방도 함께였다. 당시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물한 그 사람 눈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잘 어울려 보였는 모양이다.



고맙게도 필름을 함께 선물 받은 덕분에 한동안은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주로 인물 사진이었다. 선물을 준 사람과도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주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그러나 폴라로이드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고 만다. 그때의 그 시간 역시 내게는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다만 네임펜으로 적어둔 날짜만이 선명할 뿐.



나는 기억력이 나쁜 탓인지, 뇌의 용량이 부족한 탓인지, 지나간 일을 자주 잊는다. 그래서 20대 중반의 풋풋했던 연애사도 이제는 희미해져 버렸다. 이별의 슬픔에 펑펑 울며 사진이며 편지를 버렸던 나. 그러나 차마 버리지 못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 이제는 카메라의 묵직한 존재감도 잊고 지낼 만큼 세월이 흘러버렸다.



당근이라도 하면 되지 않아? 싶지만, 그래도 또렷이 떠오르는 마음 하나. 당시 중고 가격으로도 꽤 비쌌던(20대 취준생 입장에서는) 그 카메라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중고 매물을 뒤져 어렵게 물건을 구해서 선물한 사람의 마음. 한때의 그 마음이 여전히 귀해서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이제는 먼지 쌓여가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람이나 사람의 추억보다, 더 오래 남아 있는 건 물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어떤 물건을 생각하면 애잔해진다. 여기에 남아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폴라로이드 카메라. 내 시선이 닫지 않는 날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을 테지. 사람도 기억도 희미해지는 세월 속, 남아 있는 사물의 마음.


이전 01화나는 왜 글을 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