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진담]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유난히 울거나, 울기 직전인 얼굴이 많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거나 언니와의 달리기에서 지고 억울해서 우는 사진. 방실방실 웃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찌푸린 내 얼굴. 그렇다. 나는 질투의 화신인 둘째다.
명절 때 할아버지 댁에 가면 종종 내 이름을 다른 사촌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셨다. 세배를 하면 언니보다는 적고 동생과는 같은 세뱃돈을 받았다. 우리 아빠는 장남이고 언니는 집안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 남동생은 첫 번째로 태어난 아들. 그 사이에서 난 외탁한 둘째 포지션이었다.
아들을 바라셨던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또 딸이었고, 게다가 외가 쪽 얼굴을 닮은 터라 이쁨 받지 못했다. 게다가 언니는 나보다 공부도 잘했고 춤도 잘 추었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는 소위 인싸였고, 나는 완전 아싸.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다.
언니를 부러워하고 샘내고 질투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생각이다.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언니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목표점이었다. 언니처럼 공부를 잘할 수도, 춤을 잘 출 수도, 많은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던 나는 공부도 대강, 노는 것도 대강했다. 어차피 도달할 수 없다면 오르지 않겠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언니는 플룻을 배웠는데,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가세가 기울어서 배우지 못한 것도 괜히 억울했다. 그렇다고 플룻을 연주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30살이 되었던 해의 어버이날을 앞둔 어느 날. 나는 폭발해 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차별과 다른 형제들이 받은 편애에 눈물 지으며 분노의 편지를 써서 엄마에게 주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 엄마는 자식이 셋이라 더욱 공평하게 사랑해왔고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애써왔으며 그리고 나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사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내가 기억 못 하는 한 장면을 얘기하셨다.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화를 하시면 언니가 전화를 받고 남동생이 수화기를 이어 받고,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대로 끊어져 버리는 전화. 그리고 실망한 내 표정을 보면서 엄마는 절대로 편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한다.
돌아보니 그 편애는 조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내 부모님이 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을 품었던 건, 나의 질투가 만들어낸 거다. 나보다 잘난 언니와 나보다 귀여운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질투하며 속상해했다.
그렇게 30살의 어느 날 한풀이(?)를 하고 나서 나의 질투는 멈췄다. 그리고 지금은 장녀도 장남도 아닌 내 포지션이 정말 좋다. 솔직히 부담감이 덜하다. 가족 여행을 가면 언니가 기획하고 동생이 예약한다. 나는 (양심 없게도) 가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는 내가 안 가면 여행이 재미없다고 말해준다. 이제야 둘째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