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진담]
나에게는 여러 종류의 일기장이 있다. 있었던 일을 위주로 적는 '통상의 다이어리', 생각을 정리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꿍꿍이 노트', 그날 느낀 점 위주로 메모하는 '십 년 일기' 등이다. 다이어리는 날마다 기록하지만, 꿍꿍이 노트와 십 년 일기는 매일 적지는 않는다. 어쨌든 일기 쓰기는 내 오랜 습관이다.
이번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묵은 다이어리들을 들춰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 나는 예전과 그대로이기도 하면서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이게 나야?' 싶을 만큼 낯선 내가, 다른 한 쪽에는 '역시 나네' 싶을 만큼 너무나 익숙한 내가 있었다.
20대의 일기를 꺼내어 보니 그 속에는 아주 얄미운 아이가 하나 있었다. 제 감정만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기복이 많으며 금방 우울함을 느껴버리곤 하는.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되는 양, 무엇이든지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만만함을 가진 나. 20대의 내 모습을 일기에서 만나는 것은 그래서 낯선 경험이었다. ‘내가 정말 이랬다고?’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만약 지금 그런 애가 내 옆에 있다면, 분명 뒤에 가서 걔 흉을 봤을 거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지금의 20대들을 너그러이 바라보고 싶어졌다. 예컨대 지하철 승강장에서 마치 온 세상이 자기의 웃음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듯 떠들어대는 청춘들이 있다면, ‘나도 아마 그랬겠지’와 같은 심정으로 미소 지어 주리라. 내가 지나온 나이,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게 될 나이의 모든 사람들을 ‘또 다른 나’를 대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10년 전, 그러니까 30대 중반의 나는 지금과 똑같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열망이 그때는 내 세상의 '100 중의 80 이상'은 되었기에 쉽게 좌절하고 상처받고 넘어지기도 했다. 그 일이 잘 안되면 나라는 사람의 80 퍼센트가 흔들려 버리기 때문이다. 일종의 정신적 지진이 일어나는 셈이겠지. 그래서 생각만큼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을 때는 주변에 찡찡거렸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똑같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어쨌든 열망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내 세상의 '100 중의 10'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점은 쉽게 좌절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100 중에 10이 잘 안되어도 괜찮다. 서운은 하겠지만 좌절할 만한 일은 아닐 테다. 어쨌든 이 10의 열망을 계속 이어가기만 해보자 싶다.
그리고 10년 전의 일기에도, 지금의 일기에도 여전히 등장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연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좋은 인연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기에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찮은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일기를 날마다 쓰는 것이 역시 좋구나. 10년, 20년, 30년 ……… 후에도 들여다볼 '과거의 내'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