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진담]
‘정리’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
#1.
예전에 미니멀리스트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맥시멀리스트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 물건을 많이 가지는 행위가 불러오는 이른바 나비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예컨대
물건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면 -> 그 물건들을 수납해 놓을 가구들이 필요하고 -> 가구들이 점점 늘어나면 -> 집이 좁아지고 ->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를 꿈꾸게 되고 -> 큰 집으로 무리하게 이사를 가기 위해서 빚을 지게 되고 -> 삶이 복잡해진다!!
분명한 내용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략의 흐름은 이러했다. 이 이야기는 미니멀리스트도, 맥시멀리스트도 아니었던 내게 꽤나 강력한 인상으로 남았다.
#2.
마약 이슈로 감옥에 다녀온 한 래퍼가 팟캐스트 방송에 나왔을 때 소유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감옥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그 모든 것이 바구니 하나에 들어가더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정리정돈은 곧잘 소유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을 얼마나 소유할 것인가를 파고들다 보면 '소유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일'이 일종의 수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나는 넓은 집을 갖느라 무리하기보다는 좁은 집 안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쪽이다. 그래서 없어도 되는 물건은 사지 않는 것으로 살림살이의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보통의 집에 존재하는 몇몇 물건들 중에 우리 집에는 없는 것이 있다. 식탁이 없고 상을 접었다 폈다 한다. 정수기를 두지 않고 물을 끓여 마신다. 하지만 제습기가 있고 좁은 집임에도 에어컨이 두 대나 있다.
물건을 갖게 되면, 그 물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더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는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물건을 갖지 않는다’ ‘최소한으로만 갖는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 또한 ‘생각을 늘리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옷 정리를 위해서 가끔 ‘리클’이라는 앱을 이용한다. 헌 옷을 수거해가는 플랫폼인데, 안 입는 옷도 정리하고(심지어 집 앞에 두면 가져간다) 헌 옷을 파는 조건으로 (적은 금액이지만) 돈을 벌 수 있다.
옷 말고 다른 종류의 물건들도 이런 식으로 “밖에 내놓으면 가져가고 -> 돈으로 페이백 해준다”면 좋겠다. 그러면 신이 나서 얼마든지 팔아치울 것을 고민할 텐데.
소유냐 무소유냐 보다도 중요한 건, 그것을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느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