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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 비엣남 Dec 02. 2019

#01. 시작 - by Lee

나는 왜 베트남에 왔는가?

평생 한 명이 쓴 글만 읽을 수 있다면 누구의 것을 선택할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스티븐 킹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에서 그는 좋은 작가가 되는 조건에 대하여 몇몇 가지를 충고하고 있다. 그가 한여러 가지 조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글을 쓰는데 부사 즉 많은 미사여구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문장에 힘이 없고 좋은 이야기를 구성하지 못하면 그것을 포장하기 위해서 많은 수식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것은 단순하게 짜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구성된 내용 그리고 상황을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을 통하여 그는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 소설 작가가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왜 베트남에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인생에 미사여구를 붙이기 위해서 왔다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꿈, 성공, 사랑이라는 단어들은 스티븐 킹의 단어와 다르게 항상 불안하게 힘이 없었다. 그러한 불안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특별함, 용기, 외국 생활, 등의 여려 가지 수식어가 필요했고 그래서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오빠처럼 살아서는 절대 성공을 하지 못해” 


J.H가 헤어지기 전에 한 그 말이 기억난다. 군대를 전역한 27살 여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하고 내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27살, 군필, 지방대 법대 졸업 예정자, 그것이 꿈과 성공이라는 것을 위하여 시간을 낭비하고 얻은 이력서의 첫 줄이자 마지막 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평생 연애 걱정만 할 것 같던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연봉과 성과급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가업을 물려받고 집안의 지원이라는 것을 받는 친구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20살 그때로 멈춰 있었지만 그 시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J.H가 한 말처럼 27 살 나는 성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앞의 미래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벽을 만나게 되고 생각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비춰 볼 때 나의 선택은 항상 회피였다. 무언가를 도전하기 두려워 조금 더 쉬운 길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 쉬운 길은 나의 새로운 꿈이 되어가고 있었다. 공무원 공부를 해보라는 주위의 말에 적성과 공무원 연금의 불안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고 대기업을 준비해보라는 말에는 정년의 불안함으로 주제를 전환하고 있었다. 작은 기업을 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의 20대 후반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의 부족함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밥은 먹고살아야 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법을 찾고 있던 도중 대기업 카드회사의 영업 사원 공고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 않던 터라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면접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동네 친구가 나를 술자리로 불러 내었다. 그 회사에 가서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나의 이야기에 친구는 말했다. ‘친구야 너의 꿈은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너는 사람이 모질지 못해서 그런 영업 일은 할 수가 없다.’ ‘너는 나보다 조금 더 영특하고 큰 꿈도 있었고 남들이 보았을 때 부족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20살 이후에 너를 생각하며 많은 노력을 했었다. 왜 자꾸 꿈을 포기하고 총명하던 어린 그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면접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설날이 다가와서 세뱃돈이 10만 원이 생겼다. 영어 회화를 배우기 위해서 학교로 찾아갔다. 거기서 친구가 생겼고 영어로 조금씩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우연히 미군 변호사와 인턴으로 일을 할 기회가 생겼다. 군 시절 택시 정류장을 묻는 미군 부부에게 손짓으로 길을 설명하던 내가 미군 부대에서 변호사와 같이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조금씩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퇴직한 친구의 제안으로 친구들과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첫 여행을 올 수 있었다. 처음 대한민국이라는 땅을 벗어나 도착한 이국의 땅은 모든 것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느껴 보지 못한 뜨거운 날씨,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낯선 음식과 사람, 3박 뿐인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모든 새로운 경험을 눈에 담는 것이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을 했다. 나의 부족한 삶에 수식어를 더할 수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이 보이는 이곳에서 나의 삶 역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외국에서 무언가를 해본 나를 조금 더 높게 사주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여기서는 적은 노력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부족한 나의 삶에 베트남이라는 수식어를 더한다면 무언가가 조금 바뀌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온 이곳에서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한국에서 부족했던 것들을 이곳에서 채웠는가?’라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보았던 이곳의 신비함은 이제 하나도 남은 것이 없고 매일 보는 풍경만이 내 눈에 남아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재떨이의 담배는 여전히 쌓여만 가고 있다. 경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보다 더 지혜롭고 영악한 괴물들과 싸워야만 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스스로가 강하지 못하다면 세상 어디든 내가 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고는 싶지가 않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무언가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나는 그 선택을 믿고 싶다. 또 다른 선택을 하기에도 겁이 난다. 그리고 조금이나 내가 꿈을 꾸고 성공이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이 나라가 나는 좋다. 어디로 도망갈 수 없다면 내가 선택한 이 전장에서 최대한 살아 남아 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루하루 변하는 이 나라에서 악착같이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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