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놀아요. (2)

몰입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by 이선

혼자서도 잘 놀아요. (1)에서 이어집니다.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성장 해 어른이 된 들 달라질 리 없다. 심지어 단지 몰입의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나의 놀이시간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조차 썩 내켜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놀이는 몰입으로 뉘앙스가 변했고 곧 세분화되었다.


앞서 반복하듯 나는 '몰입'이란 단어를 애정한다.


몰입은 어려운 수행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한번 쯤 껶어봤을 순간. 주위의 환경이 의식되지 않고 내 앞에 주어진 것들에만 온전히 집중되는 그러한 순간을 말한다.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수적 요소다. 우린 분명 몰입을 찾아야 하며, 의도적으로 몰입을 늘려야 한다. 역설적으로 주위 환경이 의식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조차도 잊을 만큼의 몰입은 비 몰입 상태 즉 일상생활에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큰 도움을 준다. 사회는 너무나도 산만하다. 온갖 소리들은 어디서부터 섞였는지 알 수 없고 셀 수 없는 정보들 덕에 현대인의 정신은 과부하 상태이다. 우리는 정신적 에너지를 한곳에 소모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몰입을 끝 마친 후 방전된 상태는 피로함이 아닌 해소다. 마음 속 일상생활 덕에 쌓인 산만한 독소를 정화하는 행위다. 그것은 지친 우리를 일으키고 목적지로 갈 동력을 준다.




나의 몰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압박의 몰입, 성찰의 몰입, 동화의 몰입이다. 이들은 나의 자의식에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고 활력을 내게 선사했다.


압박의 몰입은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외적 변화를 통한 자존감 증가 또는 건강의 위협. 나는 후자였다. 병원에 수 없이 많은 돈을 날려먹고도 고쳐지지 않던 병명 모를 고질병을 운동으로써 보이지 않던 답을 희미하게 찾게 되었고 결국 결실을 맺었다. 통증에서 난 완전히 해방 되었다. 그 후 나는 운동을 맹신하게 되었다. 더 무겁게 많이 들기를 원하기 보다 하나의 동작이 완벽한 것이 중요하다. 느리지만 다치지 않게 천천히 운동하고, 근육의 크기보다도 내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움직임을 중요시한다. 내 관절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늘려간다. 건강한 육체가 자리 잡길 바라며.


즐겨보는 유튜버의 말을 빌리겠다.

운동은 위험하다. 위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장을 한다. 부상 위험이 없는 것은 성장할 수 없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참이다.


운동은 압박의 몰입이다.

몰입을 해야 '만' 한다. 하지 않거나 몰입이 깨진다면 부상이 따른다. 가학적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마조히스트적인 짓으로 심신의 힘을 동시에 소모하는 일이다. 소모가 큰 만큼 쾌락은 곱절이다.


가벼운 무게일 때 또는 맨몸 운동일 때는 조금은 바르지 않은 자세로 운동 한들 신체에 즉각적 피해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자세로 해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짊어지는 무게가 내 몸무게를 넘고 세 자리를 넘어갈 때 단 한순간 몰입이 깨진다면

이를테면 코어의 복압을 신경 쓰지 못해 풀려버린다거나, 어깨의 위치를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둔다거나 견갑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한다거나 무릎이 제 방향을 향하지 못한다면 부상은 반드시 발생한다.


나는 절대 음악을 듣고 운동하지 않는다. 음악은 몰입을 깬다. 너무 들뜨는 음악, 너무 가라앉는 음악은 운동의 템포를 변화시킨다. 그래서 BPM100 메트로놈 소리를 최대로 키워놓고 똑딱이는 소리에 맞춰 운동의 템포를 맞춘다. 다른 소음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나의 신체에 몰입한다.


타고난 것 하나 없는 인간 자체가 약한 놈이라 괴물 같은 무게를 들지 못하고 그저 중급자 정도에서 정확한 운동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니 내가 앞으로 서술할 내 방법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몰입의 순간들을 이렇게 즐기고 있다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를테면 스쿼트는 그저 무거운 봉을 대충 어깨에 걸쳐놓고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무게가 달린 무거운 바벨을 어깨에 얹을 때 무게가 몸 정중앙에 위치하도록 해야 하며, 내 어깨 가동성에 맞춰 적절한 너비로 봉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벨 밑으로 들어가 상체를 팽팽히 그리고 견고히 만들어야 한다. 앞서 말한 것들을 잘 진행해왔다면 자연스레 승모근이 솟아오를 것이고 그곳에 바를 단단히 견착 시켜야 한다.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언랙 (바벨이 배치되어 있는 기구에서 운동할 수 있게끔 빼내어 오는 행위)를 할 때 많은 발디딤. 즉 균형적이고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빼오는 행위가 길어지는 것은 그만큼 쓸데없는 힘을 소비하는 것이다. 최대한 적은 발디딤으로 적절한 위치로 무거운 바벨을 가지고 와야 한다. 그리고 배꼽을 기준으로 코어 360도 전부를 빵빵하게 부풀린단 생각으로 배에 공기를 가득 주입하고 날 짓누르는 무거운 무게의 압박을 제어해야 한다. 급하게 하강한다면 그만큼 봉의 무게가 날아갈 것이고 그리고 날아갔던 무게는 하단부에서 다시 우리 몸으로 돌아와 우리의 지지대. 척추나 무릎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발바닥은 땅을 꼬집어 종아리 근육을 활성화시켜주며 무릎은 발끝과 같은 방향으로 가며 바깥으로 골반을 열어두고 그 사이에 상체를 단단히 박아 넣는다는 느낌으로 유연성이 허락하는 최하단을 찍고 발바닥 전체를 땅을 민다는 느낌으로 지긋이 올라온다. 이때 하체 통제 부족으로 상체로 들어 올리는 행위는 허리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마지막 락아웃(최대 수축지점)에 달했을 때 반동이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최대 이완 지점과 마찬가지로 덜컹이며 날아갔던 무게가 다시 우리의 관절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목표한 횟수를 향해 모든 감각을 곤두 세운다.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옆에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지 지금이 몇 신지, 운동하고 있는 내 표정이 어떤지, 오늘 해야 할 일이 뭔지. 이 순간은 이 쇳덩이를 짊어진 내 몸을 살피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목표치에서 가까워 질수록 숨이 가쁘다. 하단 부에서 복압은 풀릴 것 같고 내가 원하는 운동속도보다 빨라지려 한다. 우리 육체와 정신은 끝없이 타협을 원한다. 끝없이 내게 속삭인다. 내려놓자. 그만하자. 이만하면 됐다. 더 못한다. 그 달콤한 제안을 탄압하고 내가 나를 이겨야 하는 중압감 속에서 운동은 진행된다. 정신으로 압박을 버텨야한다. 메트로놈이 똑딱이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는 듯 하다. 온갖 욕들이 절로 나온다. 원하는 속도, 각도, 깊이, 횟수를 채우고 운동을 마치며 랙에 바를 쾅하고 박아 넣는 순간 난 압박의 몰입에서 해방된다.


인간은 수많은 것들을 제어할 수 있다 착각 속에 살지만 대부분의 개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 개인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한정된 범위 속에서 우선적으로 주도권을 쥘 영역은 단연코 '나' 자신이다. 나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린 더 넓은 저변을 다질 수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쇳덩이를 들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짧지만 그 시간 동안의 온전히 스스로를 통제했다는 것에 우린 엄청난 희열을 느낄 것이다.


해야'만'하는 몰입. 즉 압박의 몰입에 익숙해지고 단련이 되어 간다면 일상에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주도적으로 삶 속에서 타협하는 스스로와 싸울 힘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며 정형화되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삶 안에서 인간은 자아의 능동적 영역에 대해 보살피며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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