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진달래 씨_02

by 이선

진달래 씨는 전혀 상관없는 천조각들로 꿰매어진 기상천외한 천조각 같은 사람이었다. 무섭도록 반복되는 행동과 타인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독특한 그녀만의 아우라는 여럿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쉽사리 다가갈 수 없게끔 했다.


"진달래 왔습니다"


명랑하게 스스로를 진달래라 말하며 대문으로 들어오는 행동이 더해졌다.


우린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뜨거운 카페모카에 얼음 하나를 준비하고 그녀의 생생한 노래실력을 들으려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열고 듣곤 했다. 다리를 꼰 채 양 쪽 철제 의자에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 한 번씩 머리카락이 찰랑이도록 빠르게 우리를 돌아보곤 했는데 그녀를 몰래 지켜보던 직원들이 흠칫 놀라 하면 요놈 잡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보통이 아닌 사람이다.


카페 마당 감나무에 감들이 벌겋게 익을 대로 익어 수시로 퍽 소리를 내 떨어져 마당을 더럽히는 일이 잦아지는 계절이 오도록 진달래 씨는 여지없이 수요일마다 우리를 찾아왔다.


그날은 시작부터 달랐다. 항상 정장을 입고 오던 진달래 씨는 아주 편안한 남색 후드티를 입은 채 대문을 들어섰고 놀랍게도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뜨거운 카페모카가 아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녀가 시야에서 보일 때쯤부터 당연스럽게 카페모카를 만들고 있던 직원은 만들고 있던 음료를 그대로 싱크대에 부어버리고는 다시 차가운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료를 받아간 진달래 씨는 한숨에 들이키지 않고 단 한 번도 앉지 않던 가게 깊은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본 채 멍하니 아주 오랜 시간 커피를 음미했다. 그녀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때쯤 그녀는 우리에게 목례와 더불어 미소를 지어 보이곤 대문을 나섰다.


그것이 카페에서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복학을 했다. 이따금 만나는 직원들과의 이야기에서도 진달래 씨 이야기는 점차 줄어들었고, 우리의 기억들 속에서 사라졌다.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개강을 앞둔 나는 본가 근처 번화가로 오랜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술자리가 지속되고 흡연자는 나뿐인지라 나 홀로 1평 남짓한 흡연실로 향했다. 구석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희뿌연 담배연기 사이에서 개비를 태우고 있으니 바로 옆 의자에 앉은 어떤 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괜히 눈을 마주치면 시비라도 붙을까 어렴풋이 보이는 집요한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담배를 끄고 자리를 피하려 했더니 상대가 말을 걸어온다.


"맞죠 카페에서 일하신 분"


어디서 봤더라 이 사람 낯이 익다.


"저 진달래예요!"


그렇다 불현듯 사라진 진달래 씨다. 제법 길었을법한 머리를 산뜻하게 잘랐다. 달라진 점을 잘 잡아낸다 자부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점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그날 진달래 씨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여기는 어떻게 왔냐' '본가가 이곳 근처고 여기가 제일 안주가 싸고 맛난다'는 둥 시답잖은 얘기였다. 이윽고 흡연실에서부터 나를 따라 친구들이 앉아있는 자리에 자신의 친구들과 자연스레 합석했다.


진달래 씨는 살짝 취기가 돌았는지 슬그머니 풀린 눈으로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거 없어요?"


그녀에게 궁금한 것, 사실 너무 많지만 그녀에게 자칫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많은 궁금증을 치워버리곤 한 문장을 택했다.


"목구멍은 단련이 가능해요?"


"네?"


그녀는 무슨 말인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내 뜻을 알아챘는지

목젖이 훤하게 보이도록 화통하게 웃었다.


"그거 말고 정말 궁금한 거 없어요?"


"저마다 사정이 있잖아요, 말하지 못할 사정은 궁금하지 않아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술잔을 멍하니 바라보다 소주잔을 가득 채울 만큼 소주를 따르고는 '짠'을 외치더니 묻지도 않은 모두가 그리 궁금해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8년 차 고시생이었다. 느지막이 공부 후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24시간 국밥집에 갔는데 펑퍼짐한 후드티에 땡땡이 잠옷 바지를 입고 간 자신과 대비되게 멋들어지게 꾸민 직장인 여성을 보았다. 머리를 질끈 묵고 팔소매를 정갈히 걷은 채 털털하게 소주를 들이켜는 그 사람이 그리도 멋져 보였다고 한다.


소주잔에 가득 차 있는 소주를 얼른 입에 털어놓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었어요. 어차피 거대한 세상 속에 내가 중요한 '부품'은 안될 것 알아요. 작은 톱니바퀴라도 좋으니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굴러다니고 싶었어요. 근데 나는 어떤 곳에도 속하지 못했고 엎드리면 가득 차 버리는 독서실 책상 안에서만 하루를 갇힌 채 보내야 했다고요. 그 8년이 너무 숨이 막혀버릴 것 같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은 몇 뼘 되지 않는 칸막이 처진 나무토막이라는 게 정말 싫었어요. 아니 실은 그곳조차도 저를 감시하는 가장 근거리 통제수단이었을지도 모르죠. 일주일에 단 하루만은 사회에 조그마한 톱니바퀴 인 척해보고 싶었어요. 가면극 말이에요.” 도무지 가늠이라곤 불가능해 보였던 진달래 씨의 눈에는 음울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일정한 행동들이 그녀 스스로에게 주는 유일한 유희고 일탈이었다 말한다. 기묘한 진달래 씨는 실은 발버둥 치는 진달래 씨였다.


그리곤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작은 부속품이 되었다고 말했다.


"잘됐네요, 근데 이걸 왜 저한테 말하시나요 저랑 친하지도 않고 우린 서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세상에 누구 하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알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미소 띤 입술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속에 잠재한 심연을 지우개로 지워 보이겠다며 온 힘을 하는 듯이 보였다.


자리가 파해지고 헤어지기 전 나는 가슴속에 품고 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진달래꽃 부르시나요."


그녀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이제 안 불러요."


"그럴 것 같았어요. 다행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


"성함 알 수 있을까요? 이제 진달래 씨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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