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럽습니다

by 이선

저는 일을 시작할 때면 꼭 뉴스를 듣습니다. 일하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는다는 것이 한정된 시간 속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 같아 홀로 뿌듯함을 즐기는 행위 중 하나입니다. 물론 외롭기도 덜 외롭고요. 하지만 올해의 끝이 보일수록 매일 아침마다 내 귀를 채워주던 앵커분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 조심하세요' 인사말로 1년을 가득 채우게 될 줄 몰랐습니다.

마스크 속에 습기로 턱 끝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일상인 여름을 보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개중에 제일로 울적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소가 그득한 거리를 걸어 본 기억이 흐릿해질 지경이란 겁니다.


오늘은 볼 일이 있어 주민센터를 갔습니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부터 QR코드 창을 당연스레 띄워 놓았고 허연 종이에 까만색으로 빼곡히 채워진 수많은 아무개들의 신상정보들은 여전히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멍하니 초점을 잃은 채 앉아있다 이내 복지 창구 앞에 나 굶어 죽으란 소리냐고 건물 떠나가도록 소리 지르는 분 덕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예전이라면 소리 지르는 사람의 사정보다는 담당 직원에게 마음속 위로를 건네었겠지만 목청이 대단한 저분도 당장 시대에 휩쓸리기 전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싶은 몸부림이 아닌가 싶기도, 말릴 생각 없이 침묵을 지키는 건물 내 수많은 사람들까지 괜히 딱해졌습니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내 볼일만 마치고는 건물을 나오며 내 생에 처음으로 '을씨년스럽다'라고 혼자 지껄였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도무지 입에 붙지 않는 단어인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덥니다. 입고 다니는 옷들이 두툼해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무겁게 내리 가라앉아 건조해 헐어버릴 지경인 내 콧속처럼 촉촉해질 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2020년의 끝자락입니다.


아시다시피 서울은 당장 오늘부터 1년의 마지막을 2.5단계로 마무리 지어질 것입니다. 발도 넓고 사람 만나길 좋아해 연말을 바삐 보낼 사람은 아니지만 시끌시끌한 연말이 조용히 지나갈 것이란 생각에 괜스레 싱숭생숭합니다. 그나마 귀가 열리는 좋은 소식이라 함은 오늘 영국에서 처음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내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끔찍하지만 어쩌면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지, 나 때는 말이야 가 아니라 나 때가 좋았지 라며 지금을 기릴 수도 있겠지요.


2020년 1월 1일 일기에 저는 '무언가를 넓혀가는 해였으면 좋겠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습니다.

정확히 세상은 정 반대로 흘러갔네요. 올해는 넓히기보단 좁혀지지 않게, 지니고 있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해였습니다.


다가오는 해에는 '주어지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에게서 적당히 뺏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바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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