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종교가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에 비하면 종교를 향한 많은 사람의 마음도 향하는 발걸음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만 우리네 삶 속에 사랑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종교가 사라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엊그제 데이트 도중 조계사에 다녀왔습니다. 절실한 믿음 따위는 없는 미적지근한 사람이라서요. 종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요. 내가 가는 목적지 부근에 종교시설이 있다면 일찍 나와서라도 꼭 방문한답니다. 그곳이 어떤 이를 믿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스러운 누군가를 바라는 것도, 그의 권능을 고작 나에게 써주길 바라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나를 낱낱이 뒤져볼 장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종교는 절대자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자신에게 살아갈 나날들을 가슴속에 다시 한번 새기는 행위입니다. 나를 탓하고 보듬고 또다시 걸어가기 위한 다짐입니다.
그리곤 언제나 같은 문장을 가슴속에서 간절히 읊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운은 나를 지나치기를, 다가올 불행은 나를 피해서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굉장히 무식한 바람인데요. 저는 정말로 바란답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은 나를 자만하게 만들 것이고, 닥칠 불행이 피해 간다면 나는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할 겁니다.
이런 맹세에 구태여 장소가 필요할까 싶지만, 공간의 경건함은 실로 나를 솔직하게 만듭니다. 곳곳마다 있는 커다란 동상 때문인지, 동상이 가리키는 절대자의 영향력 때문인지, 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바라는 따스한 그들의 마음이 그리 만들었는지는 미처 헤아릴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종교라는 공간은 세상 어느 곳보다 진실함을 맞이하게 되는 곳입니다.
10월이 다가온 것을 보니 올해의 끝이 보입니다. 혹여 올해 초 지지부진했던 목표가 있으시다면 꼭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류와 함께해온 그들이 주는 경건함 속에서 자신을 다짐해보시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는 건 불가능 한 일이고 되도록 무탈한 나날이 많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