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by 이선

으레 듣고 배웠던 것처럼 어른이란 두루뭉술한 단어가 내게도 제법 어우러지는 때가 온다면 자유를 한껏 만끽하는 멋들어진 존재가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더해갈수록 내 품에 쥐고 있는 걸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심지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세상의 각박함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꽤나 담배를 즐겨 피웠고, 지금도 여전히 담배를 그리워합니다. 금연에 대한 욕구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흡연이란 행위에 지고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강렬한 흡연 예찬자였죠. 200원가량으로 잠시나마 세상 근심을 잊고 새하얀 연기가 내 몸을 휘어감 싸는 그 농밀한 압박감에 쾌락을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심지어 누군가가 말렸다면 담배에 대해 티끌만 한 부정적 생각이 들 법했지만 나의 부모님 그리고 연인이었던 사람들조차 그것은 너의 판단이라며 나에게 금연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좋은 것이라고 금연을 권하지 않았냐 하겠냐만은 그들이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이유로는 아마 내가 피운 담배 개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 듭니다. 난 정확히 하루에 딱 두 개 비만 담배를 피웠습니다.

담배 두 개비는 두 번의 하루를 보내는 내게 보내는 위로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아침.

기나긴 밤 불면과 불안 속에서 겨우 하루를 시작할 정도의 전력만 충전하고는 피로를 업고 언제나처럼 뜻하지 않게 시작되어버린 아침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몽롱한 아침과 함께하는 담배는 밤새 움츠러들었던 내 각박한 정신 곳곳에 너의 기나긴 밤은 끝이 났다 알려줍니다.


밤.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되는 고요가 내려앉을 무렵,

지쳐 쓰러져야만 잘 수 있는 내게 긴긴밤을 어떻게 보낼지 따위를 생각하며 피우는 담배는 오늘 하루 내내 참고 참았던 흡연 욕구를 한 모금으로 해소해줍니다. 볼이 쏙 패일 정도로 온 힘을 다해 한 모금 깊이 독스러운 것을 폐 속 가득 채울 때면 내 폐를 넘어 저기 새끼발가락 혈관 끝자락까지 하얀 연기가 채워지는 듯한 찌릿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욕구를 꾸역꾸역 참으며 긴 기다림 끝에 해방으로 이어지는 이 순간은 아무렇게나 피워대는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방향 같지만요. 인내에서 오는 쾌락이란 그런 법인가 봅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가 더함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때론 기본값으로 영원히 가기도 하는 관계 또한 물론 있습니다. 다만 만남이 해가 되어선 안된다 믿습니다. 그것이 소중한 관계일수록 더욱 지켜야 하는 철칙입니다.


몇 년 전 뉴스를 보았습니다. 아기 앞에서 담배를 절대 피우지 않는 아버지들.

양치, 가글, 손 씻기. 샤워 혼신의 청결을 다하지만 결국 흡연자의 아이에게 담배 성분이 비흡연자의 아이보다 수 배 많은 성분이 나온다는 사실. 그럴 줄 몰랐다며 난감해하는 그들을 보자마자 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푸른색 6미리 담뱃갑을 온 힘을 다해 쓰레기통에 욱여넣었습니다.


연인 J는 기관지가 약합니다. 심각한 수준의 기관지 질환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녀는 만나는 내내 잦은 기침을 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우리는 함께 흡연을 하며 그 순간들을 즐겨왔습니다.


그 사람과 나의 만남이 우리에게 더함이 되진 않더라도 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날로 내 두 번의 하루를 묵묵히 지지해준 녀석을 떠나보냈습니다.


여전히 손끝 발끝 가득 퍼지는 독스러운 허연 연기가 간절히 생각나지만 나는 그렇게 포기하기로 했고 지금도 포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더 소중하니까요.


여전히 유행하는 게임도 하루 종일 아니 쉬는 주말이면 내내 하고 싶습니다. 때론 밀려있는 일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린 채 드러누워 하루를 낭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손아귀에 힘을 하나 둘 풀어버리면 줄줄이 새어나갈 것이 자명합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울 것이라 믿고 바라 왔던 어른이란 칭호의 실상이 사실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자 라니.


내가 되고자, 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놈의 크기만큼 내놓고 포기해야 합니다. 욕심처럼 이리저리 다 손에 쥐며 나아가기에 한 사람의 품은 그렇게 크지 않은 듯합니다.


쉽사리 넘나들었던 하고 싶은, 해야 할,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사이의 점선이 실선이 되어 갑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든을 훌쩍 넘기고 독립했다.